수년 전, 한 아티스트와의 인터뷰 자리였다. 예민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글쎄요”라거나 “그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따위로 일관하는 답변. 아니면 내가 하는 질문의 배경과 이유를 되묻는 식이었다. 까칠하면서도 예의 바른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빡침’과 식은땀이 동시에 솟아났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의 표현을 빌자면 ‘나이스한 개자식’이라고나 할까. 어색하고 지루한 공기로 숨이 막힐 즈음, 그의 매니저가 미안하고 급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형, OO이가 그냥 전주집으로 오겠대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신진시장 전주집 말씀이신지?”. 갑자기 그때까지 볼 수 없던 표정으로 그가 반색했다. “어, 거기 아세요?” ‘나이스한 개자식’이 ‘십년지기 옆집 아줌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묻지도 않은, 작업이 안 풀릴 때 찾아간다는 동해안의 한 횟집까지 털어놓으며 말 그대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의 숨겨놓은 맛집 정보를 공유했음은 물론이다. 까칠하고 새침한 표정의 그가 고등어, 삼치, 굴비를 찢어 손으로 뜯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지금도 웃음이 난다.
종로 신진시장 초입에 있는 전주집은 편하게 혼밥하고 싶거나 생선구이가 생각날 때 종종 찾는 곳이다. 큼직하고 두툼한 생선을 연탄불에 구워 줘 깔끔한 생선백반을 즐길 수 있다. 바로 옆에 쟁반집, 호남집 등 오래된 생선구이집들이 모여 있다. 신진시장은 인근에 있는 광장시장에 비해 의외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생선구이를 비롯해 닭한마리, 곱창볶음, 연탄불에 구운 돼지꼬지 백반 등도 시장을 대표하는 메뉴들이다. 맛집들이 몰려 있다보니 짬짜면처럼 뭘 먹을지 고민스러울 때 조금씩 먹으며 옮겨다니기도 좋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곱창볶음, 연탄돼지구이, 프라이드치킨까지 시장 안에서 3차를 찍기도 했다. 한번은 20대 후배들을 데려갔더니 “역시 선배는 힙하다”며 칭찬까지 들었다. 요즘은 전통시장이 MZ감성이래나 뭐래나. 아무튼 맛집은 넘치지만 지갑이 얇아 고민스러운 요즘 같은 때 딱이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채택된 분에겐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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