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의 뒷모습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이소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이소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6일 기자가 찾은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지난해 12월 재개관하며 총 70점의 유물을 선보인 불교조각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국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다.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은은한 회색빛이 감싼 전시장 중앙에 177㎝ 높이 불상이 홀로 서 있다. 불상의 앞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마치 실제처럼 옷 주름이 져 있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어떻게 저런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며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전시를 안내해주던 학예연구사가 이렇게 말했다.


“불상의 뒤편으로도 한 번 가보시겠어요? 진정 놀라운 건 바로 그 뒤편에 있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관람객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불상의 정면과 굴곡진 측면을 지나 유물의 뒷모습을 마주한 순간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어딘가에 꽂혀 있던 흔적일까. 불상 몸통과 머리에 거대한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안으로 유물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에 놓인 국보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의 앞면. /이소연 제공


놀라운 건 뒷면의 만듦새였다. 앞면과 이어지는 섬세한 옷 주름은 뒷면까지도 이어졌다.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뒷면인데도 장인은 구멍을 낸 단면을 매끄럽게 갈고 닦았다. 후대에 이 유물을 만질 누군가가 날카로운 단면에 손을 베일까 우려한 걸까. 학예연구사는 “유물의 앞면이 관람객의 세계라면 뒷면은 장인의 세계”라고 말했다. 날 것 그대로의 뒷모습에는 유물을 대하는 장인의 사려 깊은 태도가 담겨 있었다.

유물의 뒷모습은 관람객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정면과 달리 주목받지 못했고, 때론 외면 받아왔다. 박물관과 연구기관은 관람객에게 유물의 뒷모습을 감춰왔다. 날 것 그대로의 만듦새가 드러난 뒷모습은 매끄러운 정면에 비하면 흉물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에 놓인 국보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의 뒷면. /이소연 제공


하지만 최근 유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선보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이 대표적이다. 2021년 11월 새롭게 선보인 사유의 방은 금지구역이었던 유물의 뒷면을 관람구역으로 탈바꿈했다. 관람객은 미소를 짓는 반가사유상의 얼굴뿐 아니라 고뇌에 찬 뒷모습을 보면서 사유한다.


유물의 뒷면에는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단서가 숨어 있다. 임영애 동국대 문화재학과·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1970년대 경북 경주시 월지에서 출토된 약 30cm 크기 금동 판불(板佛·금동 판면에 표현한 불상) 10점과 각기 다른 크기의 금동 화불(化佛·변화한 부처) 282점의 뒷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두 유물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유물 가장자리나 뒷면에 둥근 구멍이 나 있다. 어딘가 고정돼 있던 흔적을 공유한 것이다.


임 교수는 “판불을 고정하는 뒤판이 있고 그 위에 판불과 화불이 함께 장식된 구조였을 것”이라는 새로운 추론을 내놨다. 유물의 뒷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서로 다른 유물이라고만 여겨졌던 두 유물의 유사성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이 같은 추론이 실제 연구를 통해 사실로 밝혀진다면 당대 불교 문화권에서 제작한 다른 판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걸작이 나올 수도 있다.


이제 학계의 화두는 ‘유물의 뒷모습’이다. 올해부터 10년간 월지 출토 유물 3만3292점을 분석하는 국립경주박물관은 “유물의 정면은 물론 뒷면까지 디지털 아카이브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에는 들여다보지 않았던 유물의 뒷모습을 통해 새 발견을 해보자는 취지다. 어쩌면 역사의 빈칸을 채워줄 새로운 해답은 유물의 뒷모습에서 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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