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독일에서 법조기자는 창의적 글쓰기를 못 하는 무능한 글쟁이로 평가받았다. 최고 학벌과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법률가와 비교하면 법조기자는 검찰 기소장이나 베끼는 건달에 불과했다. 그들은 검찰 기소장과 법원 판결문을 요약한 기사에 자기 이름을 다는 정도로 법률가와 동급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이러한 관행을 깨고 법조 보도의 전형을 만든 사람이 파울 슐레징어(1878~1928)였다. 그는 매일같이 베를린 형사법원 방청석에 앉아 범죄가 발생한 환경과 사건의 전개 과정을 재구성했다. 때로는 증거를 따라서 현장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재판에서는 법질서와 사회법익을 지키려는 검찰의 날카로운 기소 의견과 시민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변호인의 변론이 충돌하는데, 슐레징어는 둘 사이에 놓인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결코 “빼어나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인정받은 기자”였다. 그의 빼어남은 검찰의 기소 내용보다는 범죄가 발생한 사회적 모순에 더 집중하여 원인을 분석하는 능력에 있었다. 슐레징어는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했고, 사회적 부조리에 집중했다. 공정한 재판은 모든 피의자를 ‘범인’이 아닌 인간으로 대할 때 가능하고, 언론 보도는 공정한 재판을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윤미향 의원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지난 10일 나왔다. 서울서부지법은 검찰이 제기한 8개 혐의 가운데 7개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고, 1개 혐의만 비용처리 증빙미비로 벌금형을 내렸다. 법원은 검찰이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에 제기한 혐의 가운데 “치매 할머니에 대한 기부 강요는 준사기”라며 제시한 증거를 근거가 부족하고, 윤 의원이 사익을 추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심지어 과거 불기소 처분을 받은 동일 사건을 기소한 부분에서는 ‘검찰의 공소권 남용’으로 보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여론은 혐오에 가까운 상태이다. 1차적 책임은 공소권을 남용한 검찰에 있다. 심지어 윤 의원의 소속정당에서조차 비난 여론이 두려워 뒤로 숨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바이마르 시대 법조기자처럼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을 ‘검찰발 받아쓰기’로 메운 언론에 있다. 시민은 검찰 기소장이나 법원 판결문에 접근하기 어렵고, 전문지식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증거가 있는 현장에 접근할 수 없다. 하루하루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기도 바쁘다. 그래서 언론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나타나듯, 기자들은 그리 성실하지 않았다. 정의기억연대의 회계장부 한 번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장동 재판 과정에서 법조기자 출신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법조기자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법조기자단에서 만난 선후배를 살뜰히도 챙겼다. 정례 골프모임마다 ‘상금’을 챙겨줬고,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차용증이 없어도 수억원을 빌려줬다. 명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고가의 선물을 안겨줬다. 그 모든 비용은 공공택지 개발에서 발생한 수익이자 시민의 고혈로 채웠다. 그런데도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더는 받아쓰기에 익숙한 게으름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민낯으로 독자에게 신뢰받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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