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국내 100대 기업의 최우선 인재상은 ‘책임의식’이었다. 바로 직전인 2018년 조사에선 5위에 머물렀던 책임의식이 올해 1위로 떠오른 배경엔 Z세대(20대 초반~30대 초반)의 등장이 있다. 대한상의는 이렇게 분석했다. “기업은 인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Z세대의 요구에 맞게 수평적 조직, 공정한 보상, 불합리한 관행 제거 등의 노력을 하는 한편 Z세대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조직과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언론사의 인력구조 역시 100대 기업과 다르지 않다. 인재상을 보더라도 기자들은 채용과정부터 강한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지난 2019년 MZ세대(1980년~2000년 초 출생) 담론이 부상하고 특히 Z세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변화가 일었다. 언론사에서도 Z세대 책임의식 발현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는 수평적 구조와 공정한 보상체계 마련, 불합리한 관행 개선 시도가 이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니어 보드’처럼 Z세대의 여론을 수렴하는 기구다.
한국일보 노조 산하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올 초 6년차 이하 기자들로 이뤄진 ‘미래위원회’를 출범했다. 이들이 실명 카톡방에서 주고받은 의견과 제안을 정제해 민실위 소식지로 발행할 계획이다. 김진주 민실위원장은 “요즘 세대 간의 인식 차이와 갈등이 너무 큰데 뉴스룸에서 주니어 기자들이 의견을 내면 치기 어린 주장이나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식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국장의 액션에 이견이 있다면 책임 있는 자세로 의견을 모으고 소식지를 통해 전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참여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제 필요
서울신문이 호반에 인수되기 전인 2020년 당시 안미현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주니어 보드를 도입해 젊은 기자들의 제안과 고충을 직접 들었다. 막내부터 위로 여섯 기수 각 1명과 온라인 부서원들이 참여한 주니어 보드는 두세 달에 한 번씩 편집국장과 만나 콘텐츠 또는 업무 전반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1년 넘게 이어지던 서울신문 주니어 보드는 편집국장이 교체되고 지배구조가 바뀌는 혼란을 거치며 폐지됐다.
서울신문 주니어 보드에 참여했던 한 구성원은 “우리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고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자리였다”며 “저희의 제안이 실현될 때 보람 있었지만, 주니어가 발언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조직의 미래를 위해 말할 기회를 보장받는다는 것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올 초 신설, 아시아경제는 1기 운영 중
아시아경제는 지난해 6개월간 주니어 보드 1기를 운영했다. 7년차 이하를 대상으로 공모했고, 서류·면접을 거쳐 기자 5명과 비기자 2명을 선발했다. 공모 단계부터 개인별 매달 100만원 지급, 포상휴가 등을 공지한 덕분에 관심도가 높았다고 한다. 선발된 7명은 채용·교육제도, 조직문화 개선 같은 과제를 선정해 매주 토론했다. 논의한 결과물을 두 달마다 현상순 아시아경제 회장 등 임원들 앞에서 발표했다.
아시아경제 주니어 보드 1기로 활동한 이민우 기자는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회사 브랜드를 어떻게 키워갈지 고민하면서 미래를 그리는 작업이었다”며 “주니어 보드를 제안한 회장의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와 닿았다. 언론사는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데 이런 활동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도 2021년 9월 성기홍 사장이 취임한 이후 10년차 이하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온라인 주니어 보드 회의를 두 차례 열었다. 지금은 중단한 상태지만 사내에서 주니어들과의 소통 확대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어서 향후 재개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주니어 기자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참여한 데다 화상회의여서 깊게 논의할 순 없었지만 당시 사장의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며 “사장이 약속했던 것처럼 정기적으로 했으면 그 안에서 운영 방식 개선 등 유의미한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서울신문, 2년 채 못 넘기고 중단
형식적으로 주니어 보드를 도입한다고 해서 내부 소통이 원활해진다거나 젊은 세대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제도를 운용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성원 누구나 목소리를 내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2019~2020년 한겨레신문 10년차 이하 기자들이 참여한 레드위원회에서 상임위원을 맡았던 최하얀 기자는 “내부 소통 채널의 형태가 꼭 주니어 보드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최 기자는 “조직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체력이 필요한데, 주니어 보드 같은 기구가 단기적으로 그 체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신구세대 간에 소통 채널을 어떻게 구성할지 활발하게 논의하면서 각 조직의 특성에 맞춰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KBS, YTN, 경향신문 등은 주니어 보드를 운영하진 않지만 각각 기자협회장, 공정방송추진위원장, 독립언론실천위원장이 전임으로 회사에 상근하며 일선의 여론을 수렴해 윗선에 전달하고 있다. 다만 이런 제도가 제대로 역할하려면 의견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주체들이 전향적인 태도로 나서야 한다.
김원진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원장은 “한두 달에 한 번 독실위를 열어 콘텐츠 책임자들과 질답을 주고 받는다. 내부 비판이나 제안을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거나 수세적으로 대하는 간부들이 독실위의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개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생각을 전하고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책임자들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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