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고려인과 함께 그들의 삶과 역사도 광주에 왔다

[지역 속으로] '광주 고려인 마을 우크라이나 난민 보고서' 김명식 남도일보 기자

지난해 2월24일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치열한 양상이다. 전쟁은 대한민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는 상승하고 증시는 하락했다. 최근 난방비 폭등의 주요 요인도 여기에 있다.


광주 지역사회는 전쟁난민과도 맞닥뜨렸다. 전쟁을 피해 대한민국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발길이 광주로 이어진 것이다. 고려인은 19세기 중엽부터 광복 때까지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중앙아시아)으로 이주한 한민족 동포와 그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국내 이주민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광주고려인마을 홍범도공원에서 열린 고려인 추석 한마당 잔치에서 고려인 자녀들이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김명식 기자


지난 3월1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지역에서 살던 최마르크(13세)군은 광주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최비탈리)를 찾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7일만이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광주행 러시’ 서막이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우크라이나 고려인 대부분은 광주로 향했다. 전쟁이후 입국한 고려인은 2000여명(1월30일 기준) 정도로 국내 고려인사회는 추정한다. 이 가운데 850여명이 광주지역사회의 항공료 지원을 받았고, 700명 이상이 광주에서 정착중이다.


고려인이 대거 광주에 오면서 ‘그들은 왜 광주로 올까’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미래는 어떨까’ 의문이 생겼다. ‘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 기획보도를 시작한 배경이었다. 같은 동포이지만 외국인인 고려인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자 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급격한 ‘다인종·다민족화’ 상황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다문화 정책이 추진되는 데 주목했다. 정책 대상이 되는 이주민(고려인 등)의 목소리와 삶의 공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국내 이주민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쟁을 피해 광주에 온 김네닐라(맨 왼쪽) 가족 및 여동생 가족 9명이 광주 광산구 월곡1동 한 원룸에 모여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지난해 5월12일 광주에 도착한 네닐라씨 가족 중 성인들은 하남산단에 있는 중소기업에 일용직으로 취업해 ‘코리안 드림’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김명식 기자


전쟁이후 광주에 온 고려인들은 대부분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상태에서 입국한 고려인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그렇지 않은 고려인들은 3~4평 규모의 한 칸 방에서 어른 2~3명이 함께 지냈다. 난민들이 가족단위로 입국하는 데다 주거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한국 생활에 필요한 기초 교육을 받은 뒤 노약자와 환자, 학생 등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을 제외하곤 대부분 취업을 했다. 하남공단·평동공단의 중소기업과 식당 등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고려인 난민들에게 광주와 대한민국은 ‘조상의 땅’이면서 동시에 처음 밟는 외국 땅이었다. 주거와 일자리, 의료보험, 자녀 교육, 언어 등 적응과 정착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전쟁 트라우마 치유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취재팀은 보도에 앞서 2주 동안 광주에 정착중인 고려인을 비롯해 활동가,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고려인 지원 단체, 주민자치위원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취재와 보도 방향을 정했다. 이어 지난 7월15일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1월3일 에필로그까지 4개월간 16차례에 걸쳐 기획보도를 내보냈다.


이 중 광주 고려인마을과 경기도 안산시 뗏골마을,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등 국내 대표적인 고려인 집거지 탐방과 중앙아시아 현지 취재를 통한 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광주 광산구와 광주시교육청이 고려인 및 다문화가족 정착 지원을 위한 행정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데도 동력을 제공했다.


광산구는 고려인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직원 10명의 전담조직을 만들어 올해 1월부터 운영 중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송정도서관을 송정다가치문화도서관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기능도 확대했다. 광주시의회는 남도일보와 공동으로 ‘고려인 정착을 위한 지역사회 역할과 과제’ 토론회를 열어 고려인 정착지원 문제를 공론화했다. 시의회는 또 토론회에서 집중 제기된 다문화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다중언어교육 지원 조례(박미정 의원 발의)’ 제정에 나섰고, 올해 첫 임시회에서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김명식 남도일보 기자


이번 보도를 통해 광주시민과 광주공동체의 의로운 정신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 남겨진 고려인을 구하려는 항공료 지원 모금운동이 한 예다. 고려인마을에서 시작된 항공료 모금운동은 시민들이 십시일반 참여하면서 지난해 12월까지 10억원 가까이 모였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순수 민간차원의 힘으로 전쟁 난민들의 귀환을 돕는 건 세계적으로도 광주가 유일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광주시민들의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광주 거주 고려인사회가 그들의 삶과 역사, 문화예술을 토대로 자생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도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호남대학교와 공동 창·제작한 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의 중앙아시아 현지 공연이 대표적이다. 고려인사회와 지역사회의 모범적인 협력모델로 평가받을 만했다.


시인 정현종은 작품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고 노래했다. 정 시인의 표현처럼 고려인이 오자 연해주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역사와 한 맺힌 디아스포라 역사가 광주와 대한민국에 왔다. 삶과 문화, 예술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도 함께 왔다. 역사는 깊어지고, 문화예술은 풍부해지며, 미래는 한층 밝아지고 있는 게 광주다.


광주와 대한민국에는 고려인 외에도 동남아, 일본, 중국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 다수 거주한다. 그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가 국적과 얼굴,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삶과 역사가 공존하는 공동체 정착에 작은 밀알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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