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희생당한 민간인 유골들이 발견된 장소가 있어요?”
일본 오키나와현 요미탄촌에 위치한 치비치리 가마(동굴).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았던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당시 동굴에 숨어있던 주민 140여명 중 85명이 집단 사망한 곳이다. 지난달 29일 일본 히로시마 지역의 주코쿠신문에서 일하고 있는 이노마타 슈헤이 기자는 치비치리 가마 앞에서 한국인 학생들에게 다가가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 주현우(동국대·4학년)씨는 “대전 골령골에서 제주4·3 희생자 유해로 추정하는 유골들이 발굴돼 조사 중”이라고 답하며 한일 양국의 상황을 공유했다.
일본 가장 남쪽에 있는 섬 오키나와.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전쟁의 아픔이 서려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현지 민간인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다. 현재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의 60~70%가 오키나와에 있어 지역 불평등 문제, 미군의 범죄와 사건·사고, 미군기지 추가 건설 등으로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26~30일 한국과 일본의 예비 언론인, 현직 기자 등 30여명이 오키나와에 모였다. 한국기자협회와 한일 학생포럼 실행위원회가 진행한 ‘언론인을 목표로 하는 한일학생포럼 오키나와’(한일 포럼)에 참여한 이들은 오키나와 전쟁 역사와 군사기지화 저항 운동의 현장을 찾고, 당사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일정 첫날 오키나와현 대표 언론사인 류큐신보에 방문한 참가자들은 아라가키 타케시 류큐신보 편집본부장의 강연을 들은 후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현장 탐방에 나섰다. 참가자들은 오키나와 도심을 가르고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 비행장’이 한눈에 보이는 가스카다이 공원에 방문했다. 이곳에서 비행기 부품 낙하사고, 기지 오염물질 유출 등 군 기지 피해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히라시마 나츠미 오키나와타임스 기자의 강의가 진행됐다. 이후 참가자들은 2004년 미군 헬기 추락 사고가 일어난 오키나와 국제대학을 찾아 당시 추락 사고를 목격했던 테루야 히로유키 명예교수의 증언을 들었다.
이날 참가자들이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미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 현장이었다. 반대 시위 활동가인 야마지로 히로시씨의 설명을 들은 후 참가자들은 덤프트럭 진입을 막기 위해 매일 기지 정문 앞 정좌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내년 4월 일본 교도통신 입사 내정자인 무라코소 나나코(세이난대·4학년)씨는 이날 시위 활동가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참가자 중 한명이었다. 무라코소씨는 “히로유키라는 유튜버가 직접 이 현장에 답사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후 시위에 변화가 생겼는지를 주로 질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키나와는 처음 왔는데 영상이나 책을 통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며 “현장의 목소리와 기사의 갭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느껴 현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본 방위성의 방해에도 오키나와 전쟁 전사자와 민간인 희생자의 유골을 발굴하고 있는 구시켄 다카마츠씨, 1987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국민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미국종속에 저항해 일장기를 불태운 평화운동가 치바나 쇼이치씨와의 만남도 참가자들에겐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주도로 2017년 11월 시작된 한일 포럼은 양국의 기자 지망생들 간 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히로시마, 광주, 후쿠오카 등의 지역에서 한일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편견을 잠재우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연대의 힘을 느꼈다. 우에무라 기자는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좋은 기자의 능력”이라며 “포럼을 매년 진행하면서 양국 참가자들의 언어와 역사의식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네 번째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이수진(가톨릭대·4학년)씨는 “역사에 대해 공부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아가려는 시도가 포럼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학생들과 더 깊이 있게 대화하기 위해 첫 번째 포럼 참가 이후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다”며 “서로 대화하며 더 나은 방안을 찾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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