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9년을 못 채운 채 기자를 그만두고 정책연구자란 정체성으로 지낸지가 5년 가까이 지났다. 현직 때보다 ‘기자의 일은 언론계에서 통상 인식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저널리즘이 위기란 말이 나온 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기자란 직업의 명칭은 멸칭으로 더 자주 호명되는 이 시대에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공론장에서 다뤄진만큼 진전이 있든, 퇴보를 하든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공론장은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모색하게 한다. 대안이 정책으로 실행된 뒤에 효과 검증이 이뤄지는 곳도 공론장이다. 여러 정책 사례들을 살펴보니, 정책 의제야말로 공론장에서 제대로 논의가 축적된 만큼 현실과 정합성을 가지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생겼다. 뛰어난 정치인이나 연구자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이해하고 동의한 만큼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참여주체가 다양해졌지만, 공론장의 핵심 플레이어는 여전히 언론이다.
그런데 언론은 이 공론장의 역할을 중심에 두고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지금도 많은 언론사들이 같은 출입처에서 나오는 똑같은 발표 내용을 대동소이한 기사로 다룬다. 이런 취재 행태는 독자들이 하나의 창(언론)으로만 사회를 보던 30년 전까지의 시대적 산물이고, 사실 온라인 시대엔 기이한 모습이다. 인터넷으로 보면 거의 똑같은 기사들이 매일 수백 개, 수천 개씩 쏟아진다. 이제 언론들은 출입처에서의 발표 내용을 과감히 통신사 기사로 대체하거나 인공지능에 맡기고, 기자들에겐 발표 내용을 검증하게 하거나, 현장에서 진짜 문제를 찾아 공론화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자 개개인이 다룰 사회 문제의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에 꾸준히 천착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게 챗GPT가 사회에 충격을 주는 시대에 대체할 수 없는 기자의 일이고, 그래야 공론장에서 중요한 문제들이 발굴되고 제대로 다뤄진다.
공론장에서 해법이 제대로 논의되려면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변용될 필요도 있다. 언론은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했고, 이런 지향은 문제적 사실만을 주로 보도하는 관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기사를 써왔지만, 세상은 좀체 바뀌지 않았다. 원래 언론이 세상을 직접 바꾸려고 해선 안 된다고, 그게 저널리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는 의견이 언론계 중론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예전과 그대로인 채로 계속 사건·사고를 만들어내고, 불평등과 기후위기와 같은 핵심 문제들은 악화만 되고 있다. 왜 사건·사고가 터져야만, 혹은 사람이 죽어야만 기사가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의문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꿀 때다.
각 문제들에 어떤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는지, 그 대안들엔 어떤 효과와 문제가 있는지, 현장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어떤 문제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심층 기획기사를 한번 쓰고, 털고 일어나 다른 현안으로 옮겨가선 곤란하다. 꾸준한 천착이 중요하고, 관심의 방향을 ‘문제’에서 ‘문제를 포함한 해결 모색’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은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위배되지 않고, 누구의 편이 되라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만연한 시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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