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뉴시스에서 근무하던 12년차 A 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동료들은 부서장이 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외부 기관에 의뢰해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해자로 지목된 부서장의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됐다. 뉴시스에선 극단적인 사고로 드러난 것일 뿐 직장 내 괴롭힘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자사회가 경직된 조직문화 아래 묵인하고 외면해온 문제를 들춰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건 지난해 12월13일이었다. A 기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뉴시스 노조와 동료 기자는 고인이 부서장 B씨로부터 폭언 등 괴롭힘을 당해온 정황이 있다고 회사에 신고했다. 사측은 외부 노무법인에 의뢰해 B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지난달 16일 B씨의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는 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해당 조사에서 A 기자를 상대로 한 괴롭힘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B씨가 다른 기자들에게 가한 괴롭힘이 인정됐다.
뉴시스 사측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달 31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B씨는 지난달 27일 사표를 제출했다. 사측이 곧바로 사표를 수리해 인사위는 열리지 않았다. 뉴시스 관계자는 “인사위 개최 전에 제출된 사표를 수리했기 때문에 B씨를 인사위 적용 대상으로 볼 수 없어 종결했다”며 “(사고 직후 김형기 대표이사 명의로 공지한) 인권 교육, 심리상담 지원, 노사 공동 고충 처리기구 등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괴롭힘 입증할 물증 등 부족했지만... 동료들 ‘부서장 폭언’ 등 정황 신고
뉴시스 노조 차원에서도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김광원 뉴시스 노조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됐는데도 징계 절차 없이, B씨가 인사위 직전 제출한 사표를 바로 수리한 사측에 유감을 표명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데스크 상향평가제 도입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려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특정매체에만 해당하지 않고 언론사 전반에 퍼져있는 문제다. 국민일보 노조가 지난해 4월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는 응답이 65.2%에 달했다. 연합뉴스 노조가 지난해 9월 조합원 19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37.1%가 ‘최근 3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만연한 괴롭힘은 폭언으로 인한 모욕이다. 연합뉴스 노조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은 ‘모욕 및 명예훼손’(95명·중복응답), ‘폭행 및 폭언’(74명) 순으로 많았다. 실제 기자들은 수습 때부터 고압적인 명령과 폭언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3월 발행된 조선일보 노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극단적인 충동까지 느꼈다는 한 조합원은 “(일부 간부들은)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고 면박 주고 호통치는 게 뛰어난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친 자신들 덕분에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멘털 강한 기자로 거듭난다고 자랑처럼 말한다”고 했다.
사측, 노무법인 의뢰 후 조사 진행...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보고서 받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시행됐고 언론사 내부에 신고기구도 있지만, 당사자들에겐 심리적인 문턱이 높다. 신고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등 2차 피해가 두렵고 가해 행위가 드러나도 회사가 합당한 조치를 한다는 보장이 없어 불안하기 때문이다.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경험이 있는 한 기자는 “고충처리 담당자가 고위 간부여서 신고 자체부터 부담스러웠고 신고 이후엔 가해자가 신고자를 특정하려 하는 등 오히려 괴롭힘이 심해졌다”며 “부장을 끌어내리려고 신고했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가해자가 인사위에 오르긴 했는데 회사는 어떤 징계를 내렸는지 알리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만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 중 하나는 강력한 사후 조치다. 지난해 8월 괴롭힘 사건이 불거졌던 연합뉴스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이 우선 대책으로 꼽혔다. 당시 노조는 노사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고 성기홍 연합뉴스 사장은 앞으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자 출신인 유은수 노무사는 폭언과 격무가 일상인 기자사회가 이제라도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유 노무사는 “일상화한 폭언을 견디는 사람만이 강하고 훌륭한 기자가 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너무 깊이 박혀 있다 보니 괴롭힘을 방임하는 분위기, 힘들어하는 피해자를 깎아내리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 노무사는 “‘너 따위가’, ‘네가 그딴 식으로 하니까 일이 안 되지’처럼 기자사회에서 흔히 들리는 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목격자도 신고할 수 있다. 주변 동료들이 힘이 돼줘야 피해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돕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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