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투쟁이 숫자로 기억된다. 몇 년간의 복직 투쟁, 몇백일의 고공 농성, 몇십일의 단식.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또한 ‘1842일의 광화문농성’으로 회자된다.
시간의 길이는 투쟁의 절실함을 어느 정도 드러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지루한 하루를 견뎌냈을 사람들의 피로와 땀내, 잦은 막막함과 종종 찾아오는 연대의 환희와 같은 지난 시간의 구체적 경험이 그 숫자에는 없다. 그 시간을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다. 보도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알 수 없고, 과정을 삭제한 결과 중심의 보도는 단지 싸움의 승패만을 알릴 뿐이다. 여기에는 언론의 습(習)이 있다. 언론은 ‘사건’을 쫓을 뿐 일상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 ‘야마(기사 주제)’를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이 매일의 꾸준함을 기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렇게 현장과 교착된 감각을 기자가 가지게 된다면 우리 언론은 어떤 기사를 써낼 수 있을까. 기자의 감각은 새로운 것을 조명하고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기자가 달라지면 다른 기사를 쓸 수 있게 되고, 이는 기자의 효능감과도 연결된다.
모든 기사가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진 않는다. 기사는 현실에서 일어난 사실을 기자가 취사선택하여 한정된 지면 안에 스토리텔링한 결과물이다. 이때 필연적으로 기자는 현실에 대한 편집권을 휘두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현장에서 기자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삭제한 장면은 무엇인가?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 석 달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과 관련해 1520여 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한 달간 506개꼴인데, 하루에 16.8개의 기사가 쏟아진 셈이다. 기사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철 연착 투쟁과 관련한 자극적인 충돌과 정치인 발언 중심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새해 비마이너는 이러한 보도를 떠나 매일 아침 혜화역 승강장에서 진행되는 장애인권리예산 선전전을 꾸준히 취재해보기로 했다.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듯해 보이는 이 현장을 언론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승강장일기’라고 이름 붙인 이번 기획기사엔 야마가 없다. 기자는 현장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분(分) 단위로 기록한다. 현장의 목격자로, 그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목표다.
승강장일기는 몇 가지 취재 원칙이 있다. 노트북 없이, 고개를 들고 현장을 최대한 관찰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비마이너는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삭제했던 다양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기사에 담아본다. 그럼에도 매 순간 취사선택하여 써야 하지만, ‘망한 일기는 없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해본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말해지도록 길을 내는 언어가 절박하다.”(이문영, ‘웅크린 말들’) 즉, 승강장일기는 그 언어의 길을 내기 위한 절박한 시도다. 주류언론의 저널리즘과는 다른 문법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그만큼 풍성해진 현장을, 언어를 갖게 될 것이다. “세기적 사건의 충격보다 끊어낼 수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 쌓아 온 이야기의 전복성을 믿”(이문영)으며, 비마이너 기자는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으로 간다. 그 시간은 우리 사회에, 우리 언론에 어떤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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