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불감증이 낳은 '김만배 돈거래 사태'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주요 종합일간지 간부들이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 김만배씨와 수억원대의 수상한 돈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20년간 법조 출입기자였던 김씨와 친분이 있는 한겨레와 한국일보 간부,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김씨와 거액의 돈거래를 한 검찰 조사 내용이 언론 보도로 드러난 것이다. 2021년 가짜 수산업자에게 수백만원 상당의 고급 골프채를 받고, 고가의 외제승용차를 무상이용하는 등 언론인 3명이 최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등 언론계가 사회적 지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발생한 유사한 사태다. 거래의 규모나 정황을 볼 때 이번 사태는 언론계의 ‘윤리 불감증’이 낳은 참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참담한 일이다.


한겨레와 한국일보 간부는 아파트 분양과 주택매입자금 명목으로 김씨로부터 각각 9억원과 1억원을 받았고, 중앙일보 간부는 1억9000만원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들은 대체로 ‘사인 간에 정상적으로 차용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투명한 이자 지급 시기와 시중 금리보다 낮은 이자율, 상식적으로 볼 수 없는 거액이 오간 사정을 감안하면 이런 해명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한겨레와 한국일보 간부들은 특히 대장동 사건 보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언론은 늘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를 비판해왔다. 이번 사태로 언론이 ‘남의 눈의 티는 찾아내면서 제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당 인사들을 해고했고, 중앙일보는 사표를 수리했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한겨레는 편집국장이 사퇴한 데 이어 대표이사가 사퇴하기로 했고, 한국일보 노조도 “현 경영진과 국장단의 책임 지는 자세”를 촉구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김만배 돈거래’ 의혹이 이들 3명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대장동 사건의 공범 남욱 변호사는 “김씨가 골프를 칠 때마다 기자들에게 100만원씩 줬다”고 검찰에 진술했고, 김씨가 매년 명절 때마다 500만~7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기자들에게 챙겨줬다는 보도도 나왔다. 머니투데이 회장은 김씨에게 50억원을 빌렸다가 이자를 연체하는 등 수상한 거래를 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씨가 100% 지분을 가진 화천대유에서 수천만원의 보수를 받고 고문으로 활동을 한 전직 언론인도 여럿이다.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벅차다. 당장 또 김씨와 연루된 어떤 언론인의 이름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기자들에게 공공연하게 촌지가 건네지던 과거와 비교하면 언론인들의 금품수수 문화는 개선된 점도 있다. 그러나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들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된 것은 언론인들에게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이 과거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권력 감시와 비판이 언론인의 숙명이기에 높은 윤리의식으로 무장해야 하는데도 언론인들의 의식은 이런 사회적 기대에 턱없이 미달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정파성으로 언론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크게 추락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언론계가 ‘윤리적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번 사태를 결코 일부 기자들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다른 연루자가 있는지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은 필수다. 언론계 전체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윤리의식을 높이는 데 진력하지 않는다면 언론의 신뢰 회복은 요원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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