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칼날부터 겨누는 노동 개혁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전혜원 시사IN 기자

전혜원 시사IN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 개혁의 출발점”으로 ‘노사 법치주의’를 꼽았다. 정작 노동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라고 한다. “사실 ‘노사 법치주의’라는 말은 어색하다. 노사관계에서는 ‘자치(스스로 통치함)’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며 그 핵심은 대화와 협상이다. 대통령이 준법과 법치주의를 헷갈리는 것 같다”(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단 노사가 법을 지켜야 노동 개혁도 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30인 미만 기업이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지 않은 걸 발견해도 올해까지는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이 주 52시간 넘게 일을 시키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데(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중소기업은 사정이 어려우니 1년 계도 기간을 두겠다는 것이다.


준법의 칼날은 주로 노동조합을 향한다. 현행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해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정당한 사유’인가? 화물차 기사들이 구간별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제도인 ‘안전운임제’를 확대 적용하라며 운송을 거부한다면, 이는 정당한 사유인가,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화물차 기사들이 운전대를 놓은 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선언적으로 판단하며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모호한 법 조항으로 형사처벌의 위협을 받으며 강제로 일을 해야 한다면, 위헌성이 상당할 뿐 아니라 한국도 비준한 강제노동 금지 국제협약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국의 판례에 따르면, 노동조합법상의 노조가 아니라도 헌법상 단결권이 인정된다. 화물연대 같은 법외(法外) 노조가 파업했다고 해서 곧바로 불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고 자평하는 듯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풍화를 겪으며 정착된, 결사의 자유와 노사관계에 관한 국내외의 법과 원칙에 비춰볼 때 정말로 그러한지는 의문스럽다.


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가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하려는 노동 개혁에서 갈등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다. 기업의 이윤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노동시간’과 ‘임금’을 정하는 규칙을 바꾸는데 어떻게 노사가 이견과 갈등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에는 정부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뿐, 실제 산업현장에서 그러한 변화를 새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만들어가야 할 ‘노사’는 빠져 있다.


민주주의란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 기반한 ‘전문적 결정’보다 다원적 시민집단이 합의한 ‘현실적 최선’이 낫다 믿는 정치체제”이다(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12월27일 국회 토론회 토론문). 행정조치를 넘어서 법을 개정하려면, 나아가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연대와 협력을 장려하려면 결국 노사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이 필요한데, 그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에게 가장 고갈된 자원이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앙상한 준법의 실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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