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사랑하는 한국기자협회 1만1000여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3년 계묘년(癸卯年) 토끼의 해가 밝았습니다. 토끼는 매우 영리한 동물입니다. 또 토끼하면 번창과 풍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해 새 아침, 기대와 희망을 품기에는 우리의 언론 현실이 암울합니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서 비롯된 MBC에 대한 전방위 압박, YTN 민영화 추진, TBS에 대한 서울시 출연금 지원 중단 조례안 통과, 건설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뒤 그 위상이 끝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서울신문까지 우리의 언론 상황은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론단체 대표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또 국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권력 앞에서 분노와 허탈함이 교차하곤 합니다. 젊은 넋들 앞에 숙연해져야 할 10·29 이태원 참사 상황을 논의하는 국정감사장에서 기자 출신 두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이 필담을 나누며 낄낄댄 ‘웃기고 있네’ 사건 앞에서는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자신의 비속어 발언에 대해선 끝내 사과 한마디 않다가 느닷없이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시키고, 전용기 안에서는 가까운 기자 2명만 살짝 불러내는 비상식적인 행동에 상식적인 기자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중단 이유를 언론에 떠넘기고 가림막을 설치한 것은 불통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해마다 평가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대한민국은 현재 43위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31위까지 올랐다가 박근혜 정부 때 70위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큰 폭의 추락이 예상됩니다.
미국의 보수정권이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언론비서관과 대변인을 지낸 애리 프라이셔는 사사건건 기자들과 대척점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퇴임 뒤 <백악관>이라는 책에서 “기자들의 업무가 미국의 자유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권력자들은 비판 언론을 길들이거나 심지어 없애버리고 싶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200여년 전,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미국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 비판하는 언론에 걸핏하면 각을 세우는 윤석열 정부가 제발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한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를 위한 투쟁의 구심체로, 1964년 8월17일 창립했습니다. 선배 기자들은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저지하고 언론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한여름 열기보다 더 뜨겁게 결의를 다졌고 결국 법의 폐기를 이끌어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5대 강령 중 그 첫째가 언론자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을 업으로 삼은 우리 기자들의 몸속엔 면면히 흐르는 DNA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집념과 열정, 불편부당과 정론직필, 그리고 권력을 향한 비판정신입니다.
1만1000여 회원 여러분! 올 한해 우리 언론계에는 엄청난 고난과 시련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영리한 토끼처럼 지혜롭게 헤쳐나갑시다. 그리고 번창과 풍요를 상징하는 토끼처럼 번영과 발전을 이루는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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