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통적인 저널리스트에 대한 설명은 유명한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조판을 가르치고 경영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저널리즘 학교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저널리즘은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넘어 반상업적이어야 하며, 오히려 필요하다면 비즈니스를 희생하며 사회적 지식과 문화를 높여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 제작을 위한 기술에 무지하고 수익 구조에 신경 쓰지 않는 저널리스트가 가능할까?
워렌 버핏은 1991년에 보낸 주주 서한에서 신문, 잡지, 텔레비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자 경제적 독점사업을 이야기했다. 독점사업은 “고객들이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대체품이 없다고 생각하며 가격이 규제 대상이 아닌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분야는 제품 가격을 공격적으로 책정하고 높은 자본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점은 사소한 경영 실수를 용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능한 경영자는 독점사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사업 전체를 망하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890년대 신문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며 정보와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주요한 미디어로 자리 잡았고, 그 결과 1920년대는 가구당 약 3.1부의 신문을 구독했다. 매일 발간하는 신문의 틈새를 파고든 것은 잡지였다. 정기간행물은 시의성이 떨어지기에 신문보다 넓은 범위에 여유를 가지고 공급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은 영상과 함께 친숙한 앵커를 통해 신문의 틈새를 파고들었고 신문 구독부수 감소를 주도했다. CNN이 처음 등장한 1980년 가구당 신문 구독 수는 약 0.8부까지 떨어졌다.
신문은 독점사업이었기에 저널리스트가 수익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신문의 전통적인 독점사업을 파고들어 견고한 해자를 무너뜨렸다. 잡지는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고, 텔레비전은 고객의 다수를 가져갔으며, 인터넷은 무한한 공급과 배포를 가능하게 만들며 신문의 독점사업을 해체했다. 과연 신문은 대체품이 없던 시기에 누리던 희소성을 바탕에 둔 사업구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최근 온라인 뉴스는 강제적으로 희소성을 부여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돈을 낸 사람만 뉴스를 이용할 수 있는 유료화라든지, 로그인 한 이용자만 접근이 가능한 뉴스 모두 강제로 희소성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은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증서를 발행하여 복제가 불가능하게 만들고 희소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하지만 고민해야 할 부분은 희소성이란 선언하는 것만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약 35억원에 팔렸던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의 최초 트윗 NFT는 1년 만에 800만원 정도의 입찰을 받는 데 그쳤다.
공급이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희소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퓰리처가 말했던 저널리스트의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기술과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저널리스트는 살아남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희소성은 상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다른 사람에게서 온다. 단순히 희소성을 주장하기보다 기술과 비즈니스를 고려하여 어떤 희소성을 만들어낼지 고민이 필요하다.
송해엽 군산대 미디어문화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