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방, SBS 프로그램 재전송 중계소로 전락하나

방통위 '수중계 편성비율 규제개선' 검토
지역민방 편성권 침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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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방이 자체 인력과 비용을 들여 제작한 프로그램(순수자체제작) 비율은 얼마나 될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발간한 ‘2021년 방송산업실태조사’를 보면 지역민방 9개사 중 자체제작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KNN으로 22.25%(2020년 기준), 가장 낮은 G1은 9.41%에 불과했다. 나머지 약 80~90%는 수중계(SBS 방송 재전송), 공동제작, 외주제작, 외부구매 등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는 얘기다. 지상파 3사의 자체제작 비율은 KBS(74.25%), MBC(50.98%), SBS(57.66%) 등이다.

사진=한국민영방송연합 홈페이지 캡처.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가 수중계 편성비율 규제 완화를 포함, 방송 전반의 편성 규제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연합뉴스 보도가 나오자 지역민방 9개사 노조로 구성된 지역민방노조협의회(지민노협)는 즉각 성명을 내어 반발했다. SBS와 지역민방은 방통위 고시에 따라 적정 수준의 수중계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수중계 편성 규제가 완화되면 안 그래도 고사 직전인 로컬 프로그램이 아예 없어질 수 있어서다. 지역민방이 광고 매출 상당 부분을 SBS의 결합판매(지역·중소 방송사의 광고를 묶어서 판매)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편성권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민노협은 지난 6일 성명에서 “(수중계) 편성비율 상한 완화가 허용될 경우 지역민방의 편성시간은 더욱 쪼그라들 것이며 편성권 침해도 더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질 것은 자명하다”며 “제작에 투자하지 않고 수익에만 몰두하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지역성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순수자체제작비율을 의무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명하 지민노협 의장(G1 노조위원장)은 “이미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엔 SBS 프로그램이 나가고 있고, 로컬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TV를 잘 보지 않은 시간에 편성돼 있는 상황”이라며 “자체편성 비율이 축소돼 자체제작프로그램까지 더 줄면 경영진 입장에선 제작 인원을 감축할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방통위의 방송 편성 규제 개선안이 확정된 건 아니다. 지난 10월 방통위가 제출한 국정감사 답변 자료를 보면 방송 편성 규제 개선 과제 중 지역민방 수중계 편성 규제는 ‘자체제작 규제로 전환’ 정도로만 언급된 수준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역민방의 자체편성 비율을 낮추는 건 고려된 적도 없다”면서 “다만 ‘자체편성에 대한 의무보다 자체제작으로 변경하는 게 낫지 않냐’는 학계나 내부의 논의는 계속 있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법제화까지 이뤄지려면 자체제작 의무 비율을 정해야겠지만, 인력이나 제작비 등 지역 방송의 자체 제작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선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며 “그 부분(자체제작 비율)에 대해선 논의된 게 없고, 지향점 정도로만 보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역민방이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편성해 지역성을 구현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현행 수중계 편성 규제가 퇴색된 지 오래라는 지적도 상당하다. 자체편성 안에서도 일부만 순수자체제작하고, 나머지는 외주와 구매 등 외부 프로그램으로 편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 제작프로그램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행 규제에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미 지역민방 구성원은 자체제작 프로그램이 점점 줄어들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주말 수당·제작비 부담 등으로 인해 주말 뉴스를 폐지한 CJB청주방송, 20여년 만에 신입 PD 2명을 채용한 JTV전주방송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상대 CJB청주방송 노조위원장은 “점점 지역방송이 어려워지다 보니 회사에선 의무 자체편성 비율을 낮추길 원하고 있다. 순수 자체제작비율에 대한 의무화가 규제 완화와 더불어 논의가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 뉴스를 없앤 이후 주말 촬영은 될 수 있으면 잡지 말라는 지시들이 내려오는 상황이라 제작 위축은 당연하고, 현 프로그램 유지도 벅차다. 사람도 못 뽑고 있다”며 “특히 제작 영역에서는 외주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어 위기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송창용 JTV전주방송 노조위원장은 “20년 만에 PD를 뽑은 건 그만큼 자체제작 의무 비율이 없으니 지역 방송사에 PD가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체제작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발전기금 중 지역·중소방송 대상 제작지원 예산이 45억원인데 방송사 한 곳이 받을 수 있는 건 1억원 정도”라며 “지원이 있다면 지자체, 기업 협찬 등 외부 간섭 없이 지역성을 구현할 수 있다. 규제 비율 논의에 앞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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