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Community Biff)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관객이 직접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다양한 부대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인데,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상영하고 이후 박찬욱 감독과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대한 관객 독서 토론을 진행하거나 지역 주민들과 연계해 함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기도 했다. 동네방네 비프는 영화제가 지역민의 생활 공간 거점을 직접 찾아가는 행사다. 기존 해운대나 남포동 같은 곳을 벗어나 범어사, 유라리 광장, 차이나타운 등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등 특별 행사가 개최됐다.
이처럼 오늘날의 영화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관객을 수동적인 영화 소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다양한 욕구를 지닌 주체적 소비자로 보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둔다. 심지어 텍사스 오스틴에서 매년 개최되는 SXSW(South by Southwest)는 종합적인 문화체험행사에 가깝다. SXSW는 영화제뿐만 아니라 음악 페스티벌, 인터랙티브 체험, 컨퍼런스 및 세미나, 명상이나 요가 같은 웰니스 프로그램까지 제공한다.
영화제의 변화는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문화 서비스 제공이라는 흐름에 따른 것이지만, 이는 영화제라는 이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 예술 체험 행사들은 ~식(式), ~회(會), ~전(展)과 같은 접미사를 사용한다. 예컨대 음악회, 관람회, 전국체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영화제만 제사, 제례를 뜻하는 ‘제(祭)’라는 접미사를 즐겨 쓴다. 제(祭)는 유교 문화에서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써 의미가 굳어지게 되었지만 그 원형은 고대 부족사회의 축제에 맞닿아 있다. 사냥과 추수를 통해 획득한 음식물의 일부를 하늘에 바치고 일부는 함께 나눠먹으며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에서 음악과 춤,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고대인들은 음악과 춤, 이야기 등을 통해 그들의 서사와 정신을 나누고 영혼을 치유했으며, 어린아이들을 교육했다. 조선시대 제례에 관한 매뉴얼인 국조오례의에서도 제(祭)는 즐겁고 기쁘며 풍요로운 의식이라고 되어 있다.
영화제가 영화상영회(會), 영화관람전(展)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람객들이 참여하고 체험하고 배우는 기회가 없다면 진정한 영화제라 할 수 있을까? 참여형 영화제와 관련해 최근 내가 주목하고 있는 사례는 프랑스 파리시가 재정 지원하는 ‘나의 첫 번째 영화제(Mon Premier Festival)’이다. 이 영화제는 이름처럼 3살 정도 되는 영아와 유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제이다. 일반적인 어린이 영화제와 달리 이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흉내내거나 진지한 토론에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야말로 종합 문화예술축제에 가까운 이 영화제의 모습은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와도 닮았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를 뚫고 다양한 영화제가 정상화 되었다. 그러나 영화제의 핵심인 관객참여 프로그램들은 대폭 축소되었다. 아직도 팬데믹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영화제는 영화상영회가 아니다. 2023년에는 관객들이 영화제에 참여하고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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