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 쓴 농사일기… 우리가 몰랐던 '경기도 쌀 이야기'

[지역 속으로/박혜림 인천일보 기자]
'천년밥상 경기米 이야기 농쌀직썰' 취재기

우리에게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의 삶은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던 한반도 최고의 쌀은 예나 지금이나 ‘경기미’를 꼽는다. 그러나 서구화된 식단 변화와 수입산 쌀까지 들여오면서 영화를 누리던 ‘경기미’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속에서도 쌀값만큼은 예외다. 성난 농심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쌀과 함께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이에 인천일보는 경기도 천년 역사 속 도민들의 든든한 ‘밥심’이 돼 온 경기미 옛이야기를 기록하고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우리 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지난 4월19일부터 10월24일까지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을 연재했다.

제11화 경기도 곡창지대를 가다 김포편에 소개된 사진. 김포의 농가 위로 추수가 한창이다. /김포농업기술센터 제공


기획은 총 3부로 구성하고 25차례에 걸쳐 소개됐다. 1부 ‘경기미 이야기’에서는 경기지역 쌀에 관한 역사, 농법, 주요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경기도의 쌀 이야기를 집대성해 보여주고 있다. 2부 ‘경기인의 밥상’에서는 ‘쌀의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도민 5인의 이야기를 지역에서 즐겨먹던 ‘밥상’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 이어 3부 ‘우리쌀 우리미래’에서는 영역을 넓혀 인천, 청주, 호남평야, 일본의 쌀 이야기를 전방위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위기를 맞은 우리 쌀의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쌀에 관한 여러 일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특히 제2부에서 다뤘던 ‘반백년 농사일기, 조팽기 옹’의 이야기는 취재 과정에서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50여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농사일기를 써 온 천생 농사꾼, 조팽기 옹이 들려주는 쌀 이야기와 가족에 대한 애정을 그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앞서 소개했듯 우리 인천일보는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우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일본 현지를 방문하고 우리 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되짚어 보았다. 일본에도 경기도 이천이나 여주처럼 쌀을 명산품으로 앞세운 지역이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고시히카리’ 산지가 일본 니가타현 우오누마다. 국내에서도 고시히카리 품종은 맛 좋기로 유명하다. 국내 육성 품종을 확대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고시히카리는 까다로운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제16화 반백년 농사일기, 조팽기 옹 편에 소개된 사진. 조팽기 옹이 50년간 써 내려간 일기장이다. /박혜림 인천일보 기자

일본인 입맛에도 고시히카리는 맛있는 쌀로 통한다. 그러한 이유로 우오누마 지역의 쌀은 지금의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 일행은 니가타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단번에 이 지역이 쌀의 명소임을 알아차렸다. 공항이 있는 도쿄 하네다에서 니가타현까지는 380km. 니가타현에 가까워질 무렵 잠시 휴식을 위해 들른 휴게소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니가타 여러 지역에서 나는 쌀이 저마다 독특한 포장 옷을 입고 진열돼 있던 것. 휴게소를 찾은 방문객들은 마치 커피 원두를 고르듯 쌀의 표기사항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는 한 아름 쌀을 구매해 갔다.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도 지역의 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니가타현을 찾은 방문객들은 언제 어디서든 쌀을 어렵지 않게 샀다. 이처럼 니가타의 쌀은 기념품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 쌀은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며 문화 또는 관광 분야로도 뻗어가고 있었다. 사이타마현 교다시에 위치한 작은 마을은 해마다 1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간다. 방문객들은 논 위에 유색 벼를 심어 거대한 미술작품을 완성하는 ‘논 아트(단보아트)’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사이타마현 교다시는 논을 관람할 목적으로 세운 전망대가 흉물로 방치되자 2008년부터 논 아트를 조성하게 됐고 관람을 마친 방문객들은 논 아트에 사용된 쌀을 온·오프라인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었다.

제24화 위기의 쌀 미래를 찾아서 편에 소개된 사진.다양한 패키징의 우오누마 쌀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진열돼 있다. /박혜림 인천일보 기자


일본 니가타 우오누마 지역의 쌀 산업 현황을 듣기 위해 우오누마 농림진흥부를 찾았을 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우오누마 지역은 ‘쌀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일본 전체를 놓고 봤을 땐 국내 상황에서처럼 쌀이 남아도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우오누마 지역에선 유독 쌀이 부족하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요인을 묻자 그들은 단 한마디의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맛있기 때문이다.” 4박5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경기미가 일본 우오누마에 결코 뒤지지 않는 우수한 미질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먼 미래 우리 쌀의 경쟁력을 전망해 볼 수 있었다.


지난 7개월간의 기록은 출판으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대단원의 막을 내린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이 책으로 탄생했다. 동시에 도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출판기념회가 마련됐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농민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오늘날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八+十+八=米 쌀을 의미하는 한자 쌀 미(米)에는 쌀을 파종해 거두기까지 88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쌀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성과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이 땅 모든 이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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