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합산 55년… 척 하면 척, 두 카메라맨이 빚어낸 정선아리랑 다큐

[시선집중 이 사람] MBC강원영동 김창조 카메라기자·홍두희 카메라감독

  • 페이스북
  • 트위치

11월의 어느 날. MBC강원영동 한 기자에게서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은퇴가 얼마 안 남은 노구의 카메라기자 둘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데 기획, 구성, 섭외, 음향, 편집까지 모든 걸 직접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19년 기자 생활에 처음 본다”고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 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제보 속 주인공들을 만났다. 제보 내용은 실제와 조금 달랐다. 두 카메라맨은 경력을 합해 50년이 훨씬 넘는 베테랑들이었지만, 어떻게 봐도 노구(老軀)는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엔 두 사람을 못 알아보고 지나쳤음을 고백한다) 또 하나 정정할 것은 한 사람은 카메라기자, 다른 한 사람은 카메라감독이란 사실이다. 만 27년을 보도국에서 사건·사고 현장을 누빈 김창조 기자와 28년 동안 오락과 교양물을 주로 제작해온 홍두희 감독은 최초로 촬영부터 연출까지 둘이 도맡아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뜻을 모았고, 지난 1년여의 결실인 ‘여음(餘音) 아직, 남겨진 소리’가 오는 25일 방송을 앞두고 있다.

MBC강원영동의 김창조 카메라기자와 홍두희 카메라감독은 정선아리랑의 원류를 기록하기 위해 지난 1년여를 동행했지만, 함께 찍은 사진은 정선의 사계를 담기 위해 찾은 성백산 정상에서 촬영한 이 한 장뿐이라고 했다. /김창조 제공


올해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에 김창조 콘텐츠영상팀장은 올 초

“정선아리랑을 제대로 기록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정선군의 지원으로 기획이 첫발을 뗀 뒤, 그는 홍두희 카메라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자나 PD가 아닌 영상 담당끼리 의기투합한 건 “담는 사람”으로서의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들이 주목한 건 정형화된 형태로 전수되는 곡조가 아닌 정선아리랑의 “원류”였다. 오랜 세월 고된 삶을 가락에 실어 읊조리다가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린 소리. 정선의 골짜기마다 남아 있는 그 소리가 늙어가는 화자(話者)들과 함께 머지않아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찾는 이 없는 심심산골을 둘이 번갈아, 혹은 함께 찾으며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둘이서만 한 건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숙소가 없거든요. 촬영지 자체가 워낙 산골짜기여서요. 어르신들과 교감을 해야 하니 인원을 최소화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노래가 아닌 삶을 읊조리는 거니 인간적 교감 없이는 촬영할 수 없었죠.”(김창조 팀장)


처음엔 아예 카메라를 켜지도 않았고, 켜놓은 채 가만히 있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스테레오 붐 마이크도 내려놨다.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꾸밈없이 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묵묵히 시간을 쌓아가던 어느 순간, 남편과 자식을 같은 날 떠나보낸 80대의 노파는 나직이 아리랑을 읊조리다가 눈물을 떨궜다. 카메라는 그 모습을 고요히 기록할 뿐이었다.


영상 담당인 두 사람이 만든 다큐인 만큼 소리 외에 정선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본업을 하면서 ‘가욋일’로 다큐를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림 욕심을 양껏 채울 수 있다는 건 “모든 단점을 상쇄할 장점”이었다. 홍두희 감독은 “기존에 다큐 작업을 할 땐 그림을 찍고 싶어도 PD가 필요하다는 교감이 있어야 촬영을 가는데, 영상 둘이 뭉쳐서 하니까 팀장이 전적으로 기회를 주고 언제든 필요할 때 갈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하나를 얘기하면 열을 이해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외향적인 김 팀장은 추진력이 뛰어나고, 내향적인 홍 감독은 꼼꼼한 스타일. 그런 두 사람을 두고 주위에선 “부부같다”고 했다. 김 팀장은 “홍 감독이 엄마고 제가 아빠”라며 웃었다. 이 ‘부부’의 연은 계속될까. 김 팀장은 “(홍 감독이) 저에게 삐진 게 없으면 정년 때까지 계속 같이하고 싶다”고 했다. 태백 출신인 그는 “회사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소멸하는 탄광의 모습이나 상여(喪輿)소리 같은 것도 기록으로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로컬 방송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그는 말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