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최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논란이 일었다. 유족 동의 없는 이름공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기사, 사설 등이 진보보수 매체를 막론하고 잇따랐다. 재난보도 시 유족 의사를 최우선 고려한다는 원칙이 언론 전반에서 거론된 상황. 언론으로선 이를 반면교사 삼아 사건사고, 나아가 재난 상황에서 견지해야 할 태도, 역할을 고민하며 재난보도준칙 등을 되새겨 볼 때다.
언론중재위원회(중재위)는 민들레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보도’에 대해 시정권고를 지난달 30일 의결했다. 동의 없는 명단 공개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만큼 “유족 동의를 얻지 않은 희생자의 성명을 식별되지 않도록 하거나 수정·삭제할 것”을 권고한 조치다. 중재위는 결정문에서 “당사자(혹은 유족)의 동의 없는 (성명) 공표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한 기본권 침해”라면서 “사안의 성격이나 경위 및 (사망자 수색이나 신원확인이 종료된 후의 공표, 보도 후 일부 유족의 비공개 요청 등) 전후 사정을 종합해 기본권의 보호가 (보도를 통한 공공의 이익)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매체가 명단을 공개한 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정치 성향을 막론, ‘외신은 실명보도 시 동의를 구하고’ ‘과거와 달리 사망자 실명 공개는 안하는 분위기이며’ ‘유족에 대한 2차 가해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내놨고, 준사법기구의 판단까지 나온 상황이다.
실제 해당 보도는 여러 매체에서 거론했듯 재난보도준칙 위반 소지가 크다. 준칙은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제18조),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제19조) 등 조항을 포함해서다. 앞서 매체는 동의를 구하지 못한 사실에 유족에 양해를 구하며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후속 보도에선 ‘이름 공개 금지,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이름 공개는 상세 신상공개가 아니’라며 재난보도준칙을 어긴 사실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또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공식 발표에 따르되 공식 발표가 늦어지거나 발표 내용이 의심스러울 때는 자체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라’(제11조)는 조항도 언급했다.
동의를 구하는 과정보다 보도가 먼저 나오며 해당 보도는 ‘유족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다. 이에 이름공개가 법적으로 개인정보침해가 아닐 순 있지만 언론윤리 측면에서 문제는 여전하다. 희생자를 힐난하는 여론도 있던 터 유족에 추가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후 유족에 대한 신중함, 배려 등을 고민한 결과인 제정 취지를 무시한 채 조항을 해석하면서 준칙을 곡해한 측면이 있었다. 공중의 이익이 충분히 크다면 명단공개를 할 의의가 있었겠지만 현 보도만으로 그리 보긴 어렵다. 매체는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밝혔는데, 유족을 직접 만나 얘길 듣고 전하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름공개가 효과적인 애도인지 의문이다. 진상을 밝히는 데 불가피하게 공개가 필요했던 경우도 아니다.
준칙 넘어 현실에서 언론 전반이 이만큼 재난 희생자와 유족, 이와 관련한 언론윤리에 관심을 갖고 논의가 활발했던 적은 없었다. 지난달 초 국가애도기간 중 분향소에 희생자 이름을 담은 위패, 영정 사진이 없던 일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며 정파성의 자장 안에서 보도가 나온 맥락이 있다. 다만 언론으로선 정치에 휘둘리며 향후 사건사고, 재난보도에서 이번 같은 과실이 나오지 않도록 원칙을 숙지하고 사회 흐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4~5년 새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누출(2018년), 헝가리 허블레아니호 침몰(2019년), 이천·용인 물류센터 화재(각각 2020년), 태풍 힌남노(2022년) 등 사건사고에서 사망자 명단 공개를 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외신은 유족 동의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미국전문기자협회(SPJ)는 ‘언론보도에 따른 위해를 최소화하라(minimize harm)'는 강령을 아예 갖고 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설사 정부가 명단 발표를 했더라도 보도 여부를 판단하는 건 언론 몫이다. 명단공개가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진실을 규명하는 데 필요하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만한 공중의 이익이 없다면 유족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양식 있는 자세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족에게 사망자 명단을 알려주는 역할을 이제 언론이 할 건 아닌 것 같다. 미국의 경우 군인이 죽으면 유족에게 알리기 전엔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버지가 언론으로 알아야 되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모든 보도가 늘상 견지해야 할 인권보도준칙을 재난보도시에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준칙엔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와 병명, 가족관계 등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망자와 유가족의 인격권(명예, 프라이버시권, 초상권, 음성권, 성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아예 적시돼 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교 교수는 “뉴욕타임스에서 코로나19 사망자 명단 11만명을 지면으로 공개했을 때와 달리 왜이리 비판이 많았을까. 희생자를 안 좋게 보는 시선까지 있는 상황에서 유족의 판단을 무시하고 나온 보도가 죽음을 대하는 예의가 없다고 본 거고 정부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준칙 전문을 읽어봤다면 이렇게 될 순 없다. 명단을 갖고 있었음에도 유족과 준칙을 생각해 참은 언론들의 판단을 응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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