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재즈 바와 달콤한 튀르키예 간식이 있는 곳. 익숙한 풍경에 내가 한창 이태원 골목을 쏘다니던 딱 그 또래 청년들이 쓰러져 있었다. 심정지 인원만 수십에 달한다는 속보를 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언론에서 사망이 아닌 심정지라고 하니 기다려보자’라는 말들이 오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장에서 심정지로 분류된 환자 대부분 사망판정을 앞두고 있다는 걸 사회팀 기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마음을 이태원에 보낸 채 뜬눈으로 밤을 샜다.
새벽 내내 언론은 참혹한 참사현장을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했다. 빠르고, 생생해선 안 될 것들이었다. 기시감이 몰려왔다. 우리 언론은 앞서 세월호 참사를 경험했다. 뼈아픈 질타에 자성의 움직임이 있었고, 현실 진단과 토론을 통해 재난보도준칙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관성은 힘이 세고, 언론은 관성을 이기지 못했다.
지상파 속보에는 인파에 짓눌린 시민들 얼굴이 그대로 송출됐다. 숨진 듯한 피해자들 얼굴에 블러 처리만 옅게 한 사진도 신문사 인터넷 판에 걸렸다. 눈을 의심했다. 입고 나간 차림 그대로 누워있는 가족의 얼굴을 흐릿하게 한들 못 알아볼까? 블러 면적을 작고 옅게 하는 이유는 가릴수록 생생함이 살지 않아서다. 이태원 참사현장 보도에서 언론은 피해자들을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현장 일부로 취급했다.
불필요한 참사현장 속보도 여전했다. 각 방송사는 스튜디오에서 같은 장면을 계속 보여주며 새로울 것 없는 멘트를 반복했다. 과거에도 지적받았던 무리한 현장 인터뷰도 재연됐다. 질문하는 쪽, 받는 쪽 모두 정신없는 와중에 부적절한 장면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 KBS는 CPR 경험을 증언하는 시민에게 친구의 사망 여부를 확인해 논란을 샀다. KBS는 인터뷰 영상을 온라인에 게재했다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자 삭제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KBS·MBC· SBS·YTN은 10월31일 저녁 메인뉴스를 통해 참사현장 영상 사용을 자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와서?’란 말이 절로 나왔다. 참혹한 장면은 이미 밤샘 특보를 통해 널리 퍼진 뒤였다. 게다가 정신의학 전문가, 민언련 등이 국민적 트라우마 유발을 이유로 영상과 사진 사용 자제를 수차례 요청한 후였다. 사과라도 할 줄 알았건만, 시청자 의견을 반영했다는 자부심마저 엿보였다.
언론인들은 사회 보편의 윤리적 기준에 근거해 매일 쏟아지는 이슈들의 적절성과 옳고 그름을 신속하게 판단한다. 그런 이들이 왜 본인들이 지켜야 할 원칙과 선 앞에서는 이토록 무감각한 걸까.
다음부터 잘 하겠다는 말, 변하겠다는 약속마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사고다. 안타깝게도 희생자들과 유가족에게 다음은 없다. 언론 스스로 남은 기회가 없다는 무거운 각오로 지금 당장 보도참사의 부끄러운 역사를 끊어내야 한다. 이 마지막 문단 내용은 내가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던 2014년 말 무렵, 세월호 참사와 언론에 대해 쓴 논술 일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8년 전 문장을 여기에 붙여도 한 치의 어색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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