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실험은 간단하다. 선이 그려진 카드 두 장을 주고, 왼쪽 카드에 그려진 선과 길이가 같은 것을 오른쪽 카드의 세 개의 선에서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세 개의 선 중 두 개는 왼쪽 카드와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한 개는 너무 짧고, 한 개는 너무 길다. 정답은 뻔하다.
애쉬는 7명에서 9명 정도의 대학생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카드를 보고 한 사람씩 정답을 말하면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들 왼쪽 카드보다 확연히 짧은 선을 정답이라 말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애쉬의 부탁을 받은 연기자들로, 진짜 실험 참가자는 마지막 한 사람뿐이었다. 마지막 참가자는 처음엔 어이없는 답에 웃기도,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답할 차례가 다가오자 초조해했고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 만약 당신이 마지막 참가자라면 이 때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소신껏 정답을 말하겠는가, 아니면 집단의 압력에 굴복해 남들과 똑같은 오답을 말하겠는가. 애쉬는 수차례 실험 결과 대략 37%가 틀린 답에 동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집단이 가하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질 때 한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타인의 의견을 따르는 ‘동조 경향’을 애쉬는 이 실험을 통해 측정하고 입증했다.
그렇다면 최근 언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엉뚱한 일들도 한 번 이 실험에 대입해볼까. 우선 이 경우에도 정답은 뻔하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빌미로 전용기에 특정 기자를 태우라, 마라 정할 순 없다. 국회의원이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며 광고 불매 운동을 지시할 순 없다. 대통령실이 질문하는 기자의 복장과 태도를 문제 삼으며 출입기자단에 징계를 요구할 순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들 오답을 자신 있게 말한다. “가짜뉴스” “악의적 행태” 등 불분명한 이유를 들며 MBC를 전 방위로 압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첫 번째 참가자, 즉 오답을 처음 말하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말에 따르면 이번 전용기 배제에 대통령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고 하는데, 대통령이었을까. 아니면 친정을 팔아먹고 대통령실로 직행한 언론인 출신들일까. 혹시 국민의 대변인은 언론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국민 그 자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에서 시작된 것일까. 중요한 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이 오답 행렬에 다른 참가자들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실 내부에 또는 정치권 어디에선가 정답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으면 현행법이 보장하는 구제 절차를 통해 입장을 밝히고, 그 밖의 치졸한 보복은 삼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있다. 광고주를 협박하거나 취재를 제한하거나 기자단 내 입지를 좁히는 ‘언론 탄압’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집단이 가하는 무언의 압력 앞에서 모두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은 포기한 채 오답을 말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자리를 유지하려 동조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언론인 출신 대변인, 비서관, 정치인은 특히나 더.
지난 25일, 6개 현업 언론단체 대표들은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에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을 두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 교류를 하자는 취지다. 이들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동조 경향’에 균열을 낼 사람들이다. 이제라도 정답을 말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은 이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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