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자들은 왜 아직도 사장을 못 믿겠다고 할까

[컴퓨터를 켜며] 최승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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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한경) 12개 기수 기자들이 김정호 대표이사 연임포기 등을 촉구하는 집단 성명을 내고 2주가 지났다.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노조 대의원대회’ 개최가 연기되고 사측 역시 잇따른 ‘대화’ 자리를 비롯해 ‘새 편집인 선임’, ‘저연차기자 영업 지양’ 등 조치를 내놓으며 가시적인 불만은 초반보다 줄어들었다. 다만 성명을 주도한 주니어 기자들에게 이 문제는 잠시 모멘텀을 잃었을 뿐 언제고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는 사안으로 잠재해 있다. 가장 근원적인 부분, 즉 변화에 대한 약속과 지속 여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복수의 기자들은 “사장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탕발림을 하지만 연임 결정만 되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란 인식이 대표적이다. “사장이 뒤끝이 있다던데…”, “(연임 후엔) 피의 숙청이 시작될 것”이란 발언도 나왔다. 앞서 사측의 가장 중요한 행보가 될 수 있었던 ‘사장과의 대화’에서 대표이사가 핵심 사안인 편집권 침해를 전혀 인정치 않으며 패착이 됐다. 미디어지에 성명을 다룬 기사가 나간 후 편집국장은 제보자를 찾기도 했는데, 기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입단속에 신경 쓰는 모습에서 약속의 진정성을 믿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약속을 어겼을 때 방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우려가 특히 크다. 여러 조치가 나왔지만 ‘결단’이 있었을 뿐 ‘제도화’ 된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편집권 독립’과 맞물려 회사는 기존 대표이사가 맡아온 편집인 권한을 분리했지만 ‘편집인과 대화’에서 이 체제가 유지되는지 묻는 질문에 새 편집인은 “(변화를) 가져갔으면 좋겠다. 제 마음은 그렇다”는 정도의 답을 했다.


‘제도화’는 그간 한경이란 회사가 가장 취약했던 지점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과제를 남긴다. 집단 성명은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3년 간 누적된 불만이 쌓이다 폭발한 일이었고, 이는 한경 사내 ‘갈등의 제도화’가 실패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한경 사측의 노동조합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노조나 산하 바른언론실천위원회에서 제기한 수많은 문제들이 잘 수용돼 개선됐다면 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소지가 크다. 노조를 최소한 동등한 카운터 파트로 여기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막말로 노보에 기록되는 대신 말이다.

최승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대우


안팎에서 한경을 바라보는 여러 입장과 시선이 존재한다. 한경 최대지분을 가진 현대자동차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지분은 갖고 있지만 언론사에 경영권을 행사하는 게 없어서 공식입장이랄 게 아예 없다”고 답했다. 이번 일이 기자들에 어떤 계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유념할만하다. 성명에 불참한 한 기자는 “일을 추진한 방향이 아니라 거친 방식이 문제였는데 사장의 전향적인 수긍과 사과가 있었다. 후배들에게 미안함이 있지만 대안 없이 떠나달라는 덴 거부감이 있다”며 “무조건 달려나갈 순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성명에 참여한 한 기자는 “후배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고 했는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답이 돌아왔다”며 “탈 기자 제안이 와 고민 중이었는데 함께 들고 일어나는 모습에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사장 연임을 결정하는 이사회가 가까워지면 회사 안팎에서 여러 목소리와 입장이 충돌할 수 있다. 그 전에 상황은 수습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회사가 기자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기자들은 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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