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보는 갑작스러웠다.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려면 짐을 미리 검사받아야 하기에 출국을 이틀 앞두고 세탁된 여름옷이 있는지 옷장을 뒤지던 중이었다. 아이들이 보채는 소리에 뒤늦게 전화 진동음을 듣고 보니 대외협력비서관실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평소 내 전화를 거의 안 받는 인물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건 필시 좋은 일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밤에 무슨 일이세요?” “밤늦은 시간에…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에서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기로 했습니다.” “네? 왜요?” “문자를 보시면 이해할 겁니다.”
지난 9일 밤, 특정 언론사의 취재진을 향한 배제 조치는 이렇게 30여초의 통화로 전달됐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대통령실 당국자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추가로 설명을 해오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은 지 6분 뒤 날아온 문자로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전용기 탑승은 취재편의를 위해 제공하던 것으로 MBC의 왜곡 편파보도가 반복된 걸 고려해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밤중에 날아든 소식에 전화기가 바빠졌다. 회사에 알리고, 조작된 것 아니냐고 묻는 타사 기자들에 ‘맞다’고 확인해주고 당장 민항기표를 구해서 이동할 수 있는 지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대통령실 기자단이 들어있는 SNS 대화방은 혼란스러웠다. ‘욕이 나온다.’ ‘해외토픽감이다.’ 등 일부 타 매체 기자들의 격한 반응도 올라왔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누가 이런 제안을 했느냐, 설마 대통령이 알고 있겠느냐 개인적으로도 문의가 빗발쳤다. 날이 밝자 출근길에 나선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세금을 써가며 이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취재편의를 제공해 온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 이건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출장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대통령 일행보다 늦을 순 없기에 통보 하루가 안 돼 바로 프놈펜 행 비행기를 탔고, 두 번째 순방지인 발리로 쫓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19 여파인지 연결편이 귀했고, 13일이든 14일이든 하루 일정은 무조건 날려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한미, 한일, 한미일 회의가 줄줄이 예상되는 13일을 이동에 쓸 순 없었고 경제외교 일정이 집중된 14일 취재를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했다. 아세안+3 정상회의로 도로 곳곳이 통제되는 프놈펜 시내에선 차량 흐름이 더뎠다.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서 공항에 도착했고,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발리로 향했다. 경유시간은 80분으로 촉박해 뛰듯이 걸었다. 발리 프레스센터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다.
전용기에 탑승한 기자들의 출장일정은 4박 6일. MBC 취재진의 출장은 5박 7일로 하루가 더 길었지만 14일 하루 취재는 비었다. 전용기 탑승이 ‘편의제공 차원’이라는 주장은, 이 일정만으로도 반박할 수 있다. 게다가 전용기 내에서 특정 기자만 불러 대화한 사실이 기사화돼, 기내간담회가 없더라도 대통령이 탑승하는 비행기는 취재의 공간이 된다는 게 명확해졌다.
대통령실 기자단은 총회를 열고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부당함을 지적하며 전용기 탑승을 자발적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고, MBC와의 갈등은 단순히 취재진 몇 명에 대한 조치를 넘어 기자단의 취재활동 전반에 대한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은 순방 이후에도 “탑승기 배제는 악의적인 보도 때문”이라며 눈앞에서 MBC를 질타했고 “무엇이 악의적이냐”며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을 ‘고성’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실 참모의 ‘예의없다’는 반말 핀잔에 ‘질문도 못 하느냐’고 맞받은 일은 난동으로 몰렸고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중단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재발방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간사단에 징계 의견을 요구했는데, 기자단 스스로 MBC를 솎아내던지 도어스테핑을 포기하던지 선택하라는 것처럼 읽혀 위기감이 느껴진다. 동료들은 기자단 내 갈라치기 아니냐며 힘내라고 했지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최근 도어스테핑이 이뤄지던 로비에는 나무 벽이 생겼다. MBC 때문이 아니라지만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뉴욕 순방 이후 전화 취재도, 대면 취재도 어려워져 투명한 벽이 가로막은 듯 했는데 그게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느낌이다. 이 벽은 언제 걷힐까. 공격과 고립이 아닌, 토론과 기사로 대통령실과 소통하고 싶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