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줄이기 후퇴하는 환경부

[이슈 인사이드 | 환경]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고래야, 미안해.” “바다거북에게 미안타.”


필자가 2019년 8월 바다거북, 2020년 1월 참고래 부검 연구 현장을 취재한 뒤 썼던 르포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바다거북과 참고래 사체에 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과학적 부검 연구에서는 이들의 체내에 다량의 플라스틱이 들어있음이 확인됐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마른 북극곰이 기후위기의 상징이 되어 경각심을 안겨준 것처럼 거북과 고래 부검은 시민들의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 동물들에 대한 “사람이 미안해”라는 반응들은 이제 시민들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한번 사용한 비닐봉지를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다시 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카페에 텀블러를 들고 가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을 방문 포장할 때도 집에서 다회용기를 들고 가서 받아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도 있다. 플라스틱을 어쩔 수 없이 대량 소비하고, 버리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바뀌고 있다. 지난해 환경단체가 벌인 식품 내 트레이(플라스틱 용기) 제로 캠페인에는 모두 7곳의 식품제조기업들이 앞으로 트레이를 없애겠다고 화답했다. 플라스틱 빨대를 제품에 부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업들도 있다.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이 기업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시민들의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기업들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면서 시민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집단이 있다. 바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플라스틱 규제에 있어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환경부다.


플라스틱과 관련한 환경부의 대표적인 퇴행으로는 1회용컵과 비닐봉지·나무젓가락 등에 관한 조치를 들 수 있다. 환경부는 지난 5월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당초 6월에서 12월로 미뤘고, 지난 9월에는 시행지역을 전국에서 세종·제주로 축소했다. 또 지난 1일에는 1회용품 사용 제한 범위를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갑자기 1년간 계도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 의지가 없음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환경단체들로부터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환경부의 오락가락 행정은 신문·방송 등 언론 보도에서도 나타났다. 일부 언론은 “1회용품 퇴출한다더니 1년 계도기간” 등 계도기간으로 인해 사실상 1회용품 금지 조치가 유예됐음을 나타낸 기사를 게재했지만, 일부 언론은 ‘1회용 봉투·종이컵·빨대를 못 쓰게 된다’며 시민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제목을 달았다. 난맥이라는 표현 그 자체인 환경부 행정 탓에 언론 보도조차도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기후위기와 플라스틱 오염에 맞서기 위한 싸움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는 환경부가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연 어린이·청소년 등이 “아직 희망이 있나?”라고 물을 때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 미래세대의 물음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환경부가 벌이는 행태를 보면 희망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라고 답하게 되지 않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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