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자들 릴레이 성명, 사장을 움직였지만…

[노조 대의원대회 돌연 연기]
새 편집인, 기자 채용 등 요구
반영 차장급 미만 주니어들 "아직 멀었다"
미온적인 차장급 이상에 실망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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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대표이사 연임 포기를 촉구하는 기수 성명이 나왔던 한국경제신문(한경)에서 기자들의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일주일 새 회사는 편집인을 새로 임명하고, 기자 채용 공고를 냈다. ‘사장과의 대화’, ‘편집인과 대화’도 잇따라 열었다. 이 같은 개선 시도에도 성명을 주도했던 차장급 미만 연차, 주니어 기자들에게선 여전히 경영진에 대한 불신과 부정 평가가 다수 확인된다.

한국경제신문 12개 기수 기자들과 편집·기사심사부 기자들은 편집권 침해, 기자 사업투입 등을 사유로 지난 8일 김정호 대표이사 연임 포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게시했다. 편집인 선임, 기자채용 등 조치가 있었지만 여전히 기자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조일훈 편집인은 지난 14일 기자 30~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편집인과 대화’를 진행했다. 지난 11일 인사로 편집인(기존 논설실장 겸직)에 임명되고 구성원 앞에 나선 첫 행보였다. 이 자리에서 조 편집인은 신문이 나온 후 이뤄지는 ‘17층(사장) 리뷰 회의 폐지’, ‘발행인과 티타임 형태로 트렌드 공유, 의견교환을 하는 소통’ 등 방향을 말했다. ‘지면편집엔 미관여하고 사후 지적’을 하되 ‘사전엔 경영-편집 간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 원칙을 내세우기도 했다. 대표이사와 관련해선 ‘경영자·회사의 성과가 기자 개개인 자부심이나 보람으로 이어지지 않은 데 후회하고 있고 연임을 해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일 걸로 본다’, ‘권한 위임을 통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회사로 가는 계기로 삼는, 상징적인 조치가 제게 큰 짐(편집인 임명)으로 넘겨진 것’이라 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성명에 참여했던 한경 한 기자는 “후배들 평이 나쁘지 않고 소통을 많이 하는 선배 기자를 소방수로 임명했다보니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면서도 “권한이 별로 없는 편집인이 약속할 수 있는 게 없다보니 알맹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장과의 대화’에서 대표는 편집권 침해를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일언반구 설명 없이 갑자기 편집인을 선임했다고 납득이 되겠나”라고 했다. 또 다른 기자는 “이 지경까지 된 건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를 막는 역할을 이전 편집국장인 편집인, 현 편집국장이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엉뚱한 사람이 책임지는 걸 우려해서 사장 연임 반대를 말했지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닌데 오해를 하는 듯하다”고 했다.


앞서 김정호 사장은 2010~2020년 입사한 총 12개 기수 기자 대다수, 편집기자, 기사심사부 등이 편집권 침해와 기자의 사업 투입, 인력 보강 없는 편집국 운영, 사장의 폭언 등을 사유로 집단 성명을 낸 지난 8일 ‘사장과의 대화’를 진행한 바 있다. 김정호 사장은 당시 ‘주니어 기자 사업투입 최소화’ 등을 약속하고, 폭언과 기사 축소·삭제에 대해 사과했다. ‘연내 기자 10명 채용’ 약속을 했고, 실제 지난 14일 ‘경력기자·채용연계형 인턴 기자 모집’ 공고가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편집권 침해에 대해선 ‘기사 빼라마라 하는 게 없다’, ‘빵을 만드는데 어떻게 내가 안 먹어도 보고 파나’, ‘편집인을 나눈다고 편집과 경영하고 분리가 실행되나’ 등 발언을 했다. 대표이사가 발행·인쇄·편집인을 모두 맡는 한경의 구조에서 편집인 분리는 성명의 핵심 요구이면서 동시에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했던 만큼 기자들 반발이 극에 달했다. 곧장 사내외 게시판 등을 통해 ‘사장과 임원의 결단’을 촉구하는 글이 잇따랐다. 회사의 편집인 인사는 이 같은 대화 후 사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한경 한 기자는 이 자리에 대해 “3시간20분 대화 중 1시간30분 편집권 침해 관련 얘기였는데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했다. 기자들 얘기는 빵을 먹어보지 말란 게 아니라 거기 들어가는 설탕, 우유 비율을 사장이 결정해서 맛없어진다는 거였는데 침해가 당연하다는 투라서 실망스러웠다”며 “저연차 기자의 강매사업 모델 투입에 단도리를 하겠다는 메시지는 긍정적이지만 강성 기자는 ‘그럼 차장은 괜찮냐’고 묻는다. 저연차 부분은 개선여지가 있지만 갈 길이 멀고, 달라진 건 없다. 과도기라 본다”고 했다.


‘성명 사태’와 관련해 15일 예정됐던 노동조합 대의원대회가 돌연 연기되며 기존 ‘기자-회사’ 간 갈등은 좀 다른 양상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한경 노조는 지난 11일 ‘대의원회 소집 공고’를 통해 “회사의 조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노조의 대응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필요한 경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의견을 묻는 절차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알렸는데 지난 14일 갑작스레 무기한 연기됐다. 대의원회는 성명 후속조치를 논하는 성격답게 ‘사장 신임 여부’를 묻는 투표 추진이 결정될 수도 있던 자리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부 차장급 이상 기자들이 ‘비기자직군을 포함한 대의원회 개최’에 문제를 제기했고, ‘연기 요구’를 한 것으로 사내에 알려지면서 블라인드 앱 등에선 ‘선배 기자’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정상적인 여론수렴 절차를 막은 행태를 비판하는 ‘후배 기자’들의 목소리도 다수 나온다.


한경 한 기자는 “회사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연차이니 대자보를 붙일 때 선배들이 나서지 못한 건 이해한다. 고참일수록 힘든 일을 더 많이 겪었고 그래서 말없이 지지해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크게 실망한 게 사실”이라며 “이 사태가 났는데 이사회는 아는지, 회사는 양재동만 보는 건지 사장도 경영진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선·후배 간 사이조차 멀어지는데 이젠 현대차그룹 등 주주들조차 원망스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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