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기자와 보도 책임자에 사용자까지, 언론계가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을까. 순방에 사용되는 대통령 전용기에 MBC 취재진의 탑승을 배제한 대통령실의 조치를 두고 언론계는 유례없는 일이라며 함께 분노했다. 진보·보수, 노동자·사용자를 가리지 않고 “치졸한 보복”이자 “단세포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이라며, 언론 통제를 즉각 멈춰야 한다는 사설과 성명을 쏟아냈다.
그러나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대통령실은 ‘취재 제한이 아닌 편의 제공 거부일 뿐’이라며 끝까지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비판에 위축되기는커녕 전용기 안에서 대통령이 특정 기자들만 별도로 불러 “편한 대화”를 나누는 등 아랑곳 않는 태도를 보였다. “언론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결여돼 있다”는 지적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철학에 문제가 있다는 조짐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있었다. 당시 여러 측면에서 언론에 대한 이해나 관심 부족이 드러났는데,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며 언론 자유를 강조하다가도 한편으론 “정치 개혁에 앞서 언론노조를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거나 “인터넷 매체 말고 메이저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데서 그랬다. 그를 마크했던 한 기자는 “본인에 비판적이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에 대해선 자기를 공격하는 관점으로 보는 것 같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언론관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발언이 꽤 있어 우려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몇몇 발언만으로 대통령의 언론관을 섣불리 예단할 순 없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당시엔 일부 있었다.
그러나 취임 6개월이 지난 현재, 우려는 현실이 된 듯하다. 대선 후보 시절 보였던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9월 북미 순방 과정에서 자신의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MBC를 전방위로 압박했던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을 불과 36시간 앞둔 지난 9일 밤,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비판적 보도를 했다고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일은 군사독재 시대에도 없던 일이었다.
입국수속을 위해 대통령실에 미리 여권을 맡겨놓은 취재진이 서둘러 필요 서류를 돌려받고, 민항기를 예약해 하루 먼저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심지어 프놈펜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직항하는 민항기가 없어 MBC는 14일 발리에서 진행될 대통령의 경제외교 행사 취재가 원천 봉쇄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에서 국익을 훼손한 언론사에 대한 정당한 결정이라는 취지로 전용기 탑승 불허를 설명했다.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은 통제할 수 있다 여기나”
언론계는 즉각 반발했다. 일선 기자들 대부분이 소속된 8개 현업 언론단체를 포함해 사용자단체인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신문협회까지 나서 “대통령실이 자의적으로 전용기 탑승 여부를 결정해선 안 된다”며 취재 제한 조치의 철회를 촉구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통령 전용기는 윤석열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고 취재비용도 각 언론사들이 부담하는데도, 기자들을 탑승시키며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대통령실의 결정을 비판하며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고 민항기를 이용해 순방 과정을 취재했다. 경향신문은 “대통령실의 결정이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처사라 판단한다”며 “항의하는 차원에서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지 않고 민항기를 이용해 G20 정상회의 등을 취재·보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도 특별총회를 거쳐 대통령실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 입장을 발표했다. 출입기자단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실상 특정 언론사의 취재 기회를 박탈하는 건 다른 언론사에 대한 유사한 조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경계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방 과정에서 또 다른 취재 제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언론을 단순히 통제 또는 홍보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샀다.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풀(대표) 기자’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속 취재한 게 한 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순방엔 83명이나 되는 취재진이 동행했지만 정작 한-미, 한-일 정상회담장엔 한 명의 기자도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취재진은 대통령실이 직접 촬영한 토막 영상과 서면 보도자료 등만 제공받았다. 이번 순방에서 가장 관심이 쏠렸던 핵심 일정이 비공개나 다름없이 진행된 셈이다. 게다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회담이 끝난 뒤 직접 자국 기자들에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도 받았던 것과 달리 대통령실은 이동시간을 이유로 질의응답을 생략했다. “양국이 그렇게 협의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에도 기자들이 취재 제한의 고의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대통령이 특정 매체만 면담한 것도 논란이 됐다. 지난 13일 저녁 프놈펜에서 발리로 이동하던 중 윤 대통령은 취재기자 두 명을 기내 전용공간으로 따로 불러 1시간가량 대화했고, 이 모습을 여러 기자들이 목격했다. 대통령실은 “평소 인연이 있었던 기자들을 만나 이동 중 편한 대화를 나눴을 뿐 취재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이 해외 순방이라는 공무 수행 중 특정 기자들만 만나 사적 대화를 나눈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기자단 사이에서도 제기됐다.
대통령실을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는 “소통 측면에서만 보면 이전 정부보다는 나아져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분위기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은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후진적인 언론관이 보여 불편한 심정이다. 지금은 그 칼날이 MBC를 겨누고 있지만 다음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또 그런 식으로 언론 길들이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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