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도 대비 5조7000억원 삭감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공공임대주택 예산 6993억원을 보전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원 삭감하자는 말과 다름없어, 정부 예산안과 도긴개긴이다.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반지하 참사를 두 거대 양당이 모두 까맣게 잊은 모습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닌 민간 주도 개발을 활성화하고 종부세·법인세 등 재벌과 다주택자의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가 한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관철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윤 정부의 분양 정책에 따르면, 8억원짜리 주택을 6억원에 살 수 있고, 연봉 6000만원이면 5억원을 40년 동안 빌릴 수 있고, 미혼 청년도 청약을 신청할 수 있다. 세대 내 불평등이 극심한 청년층의 일부 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계가 도드라진다.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7명이 저소득층이고, 2명 중 1명이 최저주거기준미달가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거문제를 겪는 대상의 여건과 정책 우선순위 설계가 불일치한다. 게다가 종부세 감면으로 2023년에는 1조7000억원 규모의 세수 감소까지 예견되는 상황이다. 집 부자의 돈은 지켜주고, 가난한 이들의 살 자리는 없애고, 집 없는 청년에게는 빚을 져서라도 높은 집값을 지탱하라는 것이다.
2022년 동안 LH 서울지역본부는 공공임대주택 유형 중 하나인 청년 매입임대주택을 총 810호 공급했는데, 이에 입주 신청을 한 청년은 공급물량의 100배에 달했다. 턱없이 부족한 물량 탓에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한 청년 7만8000여명은 보증금 100~200만원으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 전세사기를 비롯해 보증금 떼일 걱정 없는 공공임대를 기다리며 이 땅 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분양과 대출만을 늘리는 것을 ‘정상화’라고 칭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수백만원으로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없애고, 수억원에 달하는 빚을 짊어지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화인가?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은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앞으로도 청년세대가 빚내서 지탱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윤 정부는 ‘미래의 중산층’, ‘건전한 중산층’을 위한 청년주거정책을 펼치겠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분양주택이 공급되어 왔고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은 지 오래지만, 다주택자 상위 100명이 평균 207채의 주택을 소유하게 되었을 뿐, 전국 자가점유율은 여전히 60%를 넘지 못한다. 반면, 장기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5%에 불과할 정도로 그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옥고’에 사는 사람, 물리적·경제적 주거불안을 겪는 사람이 200만 가구에 달한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생명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집이 필요한데, 누가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하는가? 지금은 기존 한국 사회가 야기한 주거불평등 열차에 브레이크를 걸고 방향키를 틀어야 할 때다. 국민의힘의 5조7000억원 삭감안, 더불어민주당의 5조원 삭감안은 한국 사회의 방향감각을 망각한 열차에 가속페달을 달아주는 격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비판의 목소리와 행동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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