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2차피해 소지 장면, 발언들… '24시 특보' 최선인가

[이슈 분석] 이태원 참사가 언론에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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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에서 지난달 29일 압사 사고가 발생해 156명이 숨졌다. 이날 방송사들이 일제히 특보 체제에 돌입해 현장 상황을 전한 것을 시작으로 사고 원인과 책임의 소재, 경찰 수뇌부·정부의 행태, 정치권의 반응 등을 다룬 뉴스가 현재까지 잇따른다. 언론으로선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최악의 국면에서 다시금 시험대에 오른 나날이었다. 지탄받아 마땅한 뉴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참사 현장 영상사용 자제’, ‘무리한 유족취재 지양’ 등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분명하다. 아직 규명될 부분이 많은 만큼 언론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 보다 큰 맥락에서 언론은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 향후 재난이나 재난에 준하는 사건·사고 상황에서 제 역할을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고민이 대표적이다.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꽃들이 놓여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애도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이 과제를 안게 됐다. /연합뉴스

방송사 ‘24시간 특보 체제’ 최선일까

이태원 참사는 방송사의 ‘특보 체제’ 방식에 과제를 남겼다. 사태 발생 초기 KBS를 시작으로 지상파,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이 잇따라 특보를 편성해 다음 날까지 방송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모자이크 처리는 했지만, 사회적 트라우마를 양산할 수 있는 영상이 반복재생 됐다. 기자의 현장 접근이 어려웠고 관계 당국조차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2차 피해 소지’, ‘확인되지 않은 발언’ 등 생존자와 목격자 인터뷰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루 만에 지상파 3사와 YTN 등이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방침을 통해 다수 국민의 정신적 충격을 줄이려는 행보가 나왔지만, 초기 대응이 최선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현재 관행처럼 자리 잡은 ‘24시간 특보 체제’와 관련이 있다. 국민적 관심도나 피해 규모가 큰 사건·사고면 일단 생중계를 하고 그 시간을 무리하게 채우려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방송사 보도본부장을 지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태풍이 오거나 산불이 났을 때 혹은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을 때 특보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며 “이태원 특보는 사회 심리적 충격이 컸고 우리 모두 알 필요가 있는 일이었지만 국지적이었고 극복을 위한 경우는 아니었다. 이렇듯 사회적 공감대, 어웨어니스(awareness)를 넓히려는 특보라면 24시간 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난이 났는데 다른 방송을 하면 뭇매를 맞으니 방송사들이 쉽게 방어적으로 선택하는 옵션이다. 단순히 물량 공세가 좋은 게 아닌 만큼 압축해서 전하거나 한 시간마다 하는 등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 결정은 방송사는 물론 시청자, 언론시민단체 등이 함께 논의하며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시청자나 타 매체의 예상되는 질타를 사전에 설득하고, 적어도 언론계 내의 컨센서스(합의)를 얻는 절차로서다. 이번 참사는 재난에 준하는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사고에서 최선의 언론대응이 어떤지, 사회적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과제를 남긴 만큼 명분은 충분하다. 나아가 언론 외 유튜브, 카카오톡 등 플랫폼의 재난 시 역할을 두고 사회적 논의 역시 추진될 필요가 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문제가 있으니 특보 체제를 바꾼다’ 해도 참사 발생 시 방송사가 특보를 안 하면 문제제기는 나온다. 시청자를 포함해 새 논의를 같이 고민하는 테이블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언론사만 바뀌어서 될 게 아니”라며 “참사 당일 새벽 SNS 등을 통해 모자이크 처리도 안 된, 사회에 트라우마를 안기는 영상이 떠돌았는데 플랫폼 사업자는 어떻게 미디어다운 역할을 할지 얘기를 시작할 때”라고 했다.

윤리의식 높아졌지만 현장 문제는 여전

이번 참사를 두고 사고 초기부터 ‘예견된 참사’란 지적이 제기됐고, 실제 경찰과 행정 등 관계 당국의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인재(人災)였음이 여러 증거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정말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눈앞에서 벌어질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준비 없이 맞닥뜨린 참사에 언론 보도가 그나마 ‘선방’할 수 있었던 건 세월호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현업 단체들이 나서서 재난보도준칙을 공유하고, 언론계 공동 대응을 주문하면서 사고 초기 언론 현장의 일부 혼란도 비교적 빠르게 수습될 수 있었다. 유가족 취재 시 반드시 동의를 받도록 하거나, 기사를 통해 유족의 동의 여부를 알리고, ‘무리해서 취재하지 말자’는 합의가 뉴스룸 내에 상당수 공유된 점도 세월호 이후 달라진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종일 돌아가는 뉴스 특보를 채우기 위해, 몇 개 면씩 배정된 신문 지면이나 포털 뉴스판을 채우기 위해 사고 현장과 빈소, 분향소 등지에서 ‘기삿거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적 과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보고해야 한다는 압박감 혹은 책임감에 빈소 앞에서 몇 시간씩 ‘뻗치기’를 하던 기자들은 슬픔과 분노에 찬 유족들에 의해, 유족의 요청을 받은 경찰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이렇게 취재해 쓴 ‘사연’ 기사는 ‘조회수 장사’ 한다는 이중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이번 사건 같은 경우 공개된 사건이라 유족을 통해 유의미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나 의문이 들었다. 유족을 취재하는 게 조회수를 원해서 쓰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 기자는 ‘무리해서 취재하지 말라’는 지시를 넘어 ‘왜 유족 취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뉴스룸 내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하는 취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공적 논의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등 의미 부여가 있으면 취재를 하는데 동기 부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 사회 구성원의 충격이 큰 사고에서, 물리적으로 많은 기사를 쓰면서 현장의 기자들은 정신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번엔 취재진의 트라우마 상황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상당수 언론사가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나서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겪는 취재진을 보호하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건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김유나 국민일보 사건팀장은 지난 7일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 발표회에서 “팀이 10명으로 꾸려졌는데, (참사 이후) 3명이 업무를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 돼서 의무 배제가 됐고, 이들이 빠진 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야 하는데 대체 인력이 없는 상황이어서 남은 사람들이 더 많은 노동 시간을 들여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그러니까 기자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사실은 현장에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제정된 재난보도준칙은 ‘현장 데스크’와 ‘재난현장 취재협의체’ 운영을 제안한 바 있다. 현장 데스크 등 각사의 대표가 참여하는 취재협의체는 “현장의 여러 문제를 줄이고, 재난보도준칙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세월호 이후 크고 작은 재난현장에서 취재협의체가 꾸려진 적은 없다.

일상화된 재난, 언론 대응 역량 강화 필수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언론이 ‘재난의 일상화’를 말한다. 재난이 일상이라면 언론의 재난 보도도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심석태 교수는 “스터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보도준칙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스터디를 하고 상시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우리가 사실 태풍보도는 잘 한다. 산불보도도 이제 웬만큼 하는데 지진특보는 잘 못 할 거다. 경험치가 적으니까. 아무튼, 갑자기 느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지상파 방송사 한 기자도 “숙달된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기자는 뉴스 특보에서 동어반복으로 시간을 때우는 문제 등을 지적하며 “홍수나 태풍은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어서 챙길 여력이 있는데, 이번 사태처럼 돌발적으로 터지면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자나 사회부 현장 기자는 어떤 정보를 먼저 전하고 구체적으로 전할지 등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군데에서 취재한 소스가 현장 기자에 전달되는 순환구조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거의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재난대응 시스템만이 아니다. 언론도 재난이 벌어지면 순발력 있게 대응만 할 게 아니라 과거의 기록에 비춰 짚어볼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재난은 스케치가 아니라 과학적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고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오 위원은 “재난이 항상 사회부의 영역이 되는 게 문제라고 본다”면서 “외국 언론들이 보도를 잘 했다고 그러는데, 그들은 우리처럼 빠르게 보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우리 언론도 내부의 누군가는 한 발짝 떨어져서 팔로업을 하면서 데이터 분석 등 과학적 분석도 하면서 ‘빨리빨리’가 아니라 사안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백업을 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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