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시선이 중국으로 향했다. 향후 5년을 이끌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고 그를 보좌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시 주석 포함 7명)도 꾸려졌다. 지난달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들이 붉은 카펫을 걸어 나오자 특파원들은 경악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시 주석의 측근들로 채워져서다. 덩샤오핑이 어렵사리 구축한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무너지고 마오쩌둥의 ‘1인 지배’ 시대가 다시 열렸다.
한국을 비롯한 외신 매체들이 더 주목한 것은 지난달 22일 당대회 폐막식 때 나온 후진타오(80) 전 주석의 ‘깜짝 퇴장’이었다. 후 전 주석은 중국 정치계 3대 파벌(태자당·공청단·상하이방) 가운데 하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시 주석에 앞서 2002~2012년 중국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가 폐막식 도중 수행원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뜨자 다양한 해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초기에는 ‘그가 시 주석에 반대를 표하고자 일부러 걸어 나갔다’고 하더니 지금은 ‘시 주석이 일부러 그를 쫓아냈다’는 보도가 주를 이룬다. 서울에 있는 지인도 기자에게 연락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가 원로까지 끌어 내리는 시 주석이 정말 무섭다”고 화를 냈다. 후진타오 퇴장의 진실은 무엇일까.
기자는 20차 당대회 폐막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중국 외교부가 한국 매체에 할당한 취재 쿼터는 4~5개였는데, 거기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행사에 간 국내외 특파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취합했다. 이들에 따르면 인민대회당 내 기자석과 후 전 주석 간 거리가 너무 멀어 맨눈으로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또 기자들이 행사장에 입장했을 때는 이미 해당 상황이 꽤 진행된 뒤였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진타오 퇴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 본 외신 기자는 없었다.
서구 매체들은 후 전 주석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내쳐졌다고 타전했다. 대만 자유시보는 “후 전 주석이 차기 공산당 인사 명단이 적힌 서류를 보려다가 시 주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끌려 나갔다”고 보도했고, 미국 CBS방송도 “후 전 주석이 자리에서 떠나는 것을 주저했다”며 강제 퇴장설에 힘을 보탰다. 미 정치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시 주석의 의도적인 무대 연출 가능성을 언급했다.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 앞에서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을 “효과적으로 숙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볼 때는 ‘그가 건강 문제 때문에 스스로 떠났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우선 후 전 주석은 국가주석에서 물러난 뒤로 늘 수척한 모습을 보였고, 지난 16일 당대회 개막식 때도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어렵게 입장했다. 공산당 지도부가 정말로 그의 반대 목소리를 우려했다면 아예 행사장에 못 오게 막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공산당은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당이 합의해 내린 결정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따르라’는 민주집중제를 원칙으로 한다. 후 전 주석은 평생 이를 지키며 살았고 이 원칙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번 당대회에서 자신의 계파를 모두 내친 시 주석이 못마땅할 수 있지만 이제 와서 평생의 신조를 버리고 반대 의사를 드러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결정적으로 후진타오는 시진핑에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후가 집권할 때도 서구매체들은 그를 ‘독재자’로 묘사했다. 지식인을 박해하고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등 통치 스타일이 대동소이해 이름을 가리고 보면 후진타오나 시진핑이나 ‘차부뚜어’(差不多·큰 차이가 없다)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아들인 후하이펑 저장성 리수이시 당서기의 정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도발을 감행할 리 없어 보인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날의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후진타오가 외압에 의해 끌려 나갔다는 보도는 중국의 갈등과 분열을 바라는 영미권 언론들의 희망사항을 담은 해석이 아닌가 싶다. 이들의 ‘아니면 말고’식 보도에 전 세계가 무비판적으로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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