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되냐 물었던 산복빨래방,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르포] 부산일보 '산복빨래방' 마지막 날… 호천마을 주민들 삶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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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와요. 이리 와야지 만나지. 오늘 오면 이제 마치는구먼.” 지난달 31일, 산복빨래방이 문을 연 지 10분도 채 안 된 시각. 기다렸다는 듯 가게에 들어선 김순이(84) 어머님은 아쉬움 섞인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이날은 지난 6개월간 직원으로 일했던 부산일보 기자와 PD들이 빨래방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었다. 흰 봉지에 든 요구르트를 책상 위에 꺼내놓으며 “마지막 대접”을 한 어머니는 “모두 예쁜 분들인데 어데 가서 만나. 정들자 모두 떠나가네”라며 서운해 했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따라 경상북도 상주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60여년을 살았던 어머님에게 마을에 찾아온 청년들은 아들, 손녀나 마찬가지였다. 기자나 PD인 건 “관심 없고”, “그저 이래 정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5월9일 부산 산복도로 한복판, 부산진구 호천마을에 빨래방을 연 부산일보 김준용, 이상배 기자와 이재화, 김보경 PD는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6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사진은 마을 어머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부산일보 제공


이날 산복빨래방엔 총 9명, 4팀의 어머님들과 아이들 4명이 빨래방을 찾아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렇다”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님이 있는가 하면 학교에서 만든 초콜릿을 선물로 주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방과 후 학습을 끝내고 태권도장에 가기 전, 매번 빨래방에 들렀던 김수환(12) 군은 “잘 놀아준 형들이 떠나니 아쉽고 보고 싶을 것 같다”며 “건강하게 또 만났으면 좋겠다. 성인 되면 술 사달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지난 5월9일 부산 산복도로 한복판, 부산진구 호천마을에 빨래방을 연 부산일보 김준용, 이상배 기자와 이재화, 김보경 PD는 이날을 끝으로 6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거처이자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였던 산복도로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빨래방 직원이 되어 주민들과 동고동락했던 이들은 매일 출근했던 가파른 골목 사이 빨래방과 작별했다. 그동안 단칸방 2칸을 개조한 3평 남짓한 공간에서 23kg 세탁기 2대와 건조기 2대로 했던 빨래만 총 504개였다. 귀한 손주가 오기 전 빨아야 하는 이불부터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카펫까지, 가지각색 사연이 담긴 빨랫감을 받으며 이들은 주민들의 속 깊은 사연과 생생한 일상을 듣고 기록했다.

지난 5월9일 부산 산복도로 한복판, 부산진구 호천마을에 빨래방을 연 부산일보 김준용, 이상배 기자와 이재화, 김보경 PD는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6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사진은 마을 아이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부산일보 제공


물론 이 작업들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엔 놀러온 기분이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공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빨래방의 마스코트, 고양이 ‘산복이’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등 공간 청소는 기본이었고 분리수거에 각종 공과금까지, 제때 챙겨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빨래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데, 그 와중에 어머님들의 이리저리 흩어지는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 콘텐츠로도 만들어야 했다. 이재화 PD는 “언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르니 다 찍는데, 하루에 찍은 영상만 100기가는 나왔다”며 “지금까지 찍은 원본 영상이 4테라짜리 카드 10개 정도 분량이다. 저희가 화요일이 마감인데, 그 땐 다들 예민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5월에 문을 열고 무료 빨래방을 운영한다고 알리니, 다음 달부터 유료화할 거라는 의심 어린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을 주민들은 어느 순간 이들이 기자, PD인 것도 잊어버린 채 젊은 청년, 총각으로 바라봤다. 어머님들과 전을 부쳐 먹고, 아침 체조를 하고, 함께 기장 바다에 고둥을 캐러 가니 그럴 법도 했다. 김준용 기자는 “처음엔 그냥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음기나 노트북도 켜지 않았다”며 “본격적으로 어머님들 사연이 나오기 시작한 게 7월 말에서 거의 8월 초 돼서다. 한 어머님 얘기를 취재하는 데 2~3개월이 걸릴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부산 신발산업 박물관에도 없는 여공들의 이야기를 채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9일 부산 산복도로 한복판, 부산진구 호천마을에 빨래방을 연 부산일보 김준용, 이상배 기자와 이재화, 김보경 PD는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6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사진은 산복빨래방 간판. /부산일보 제공


게다가 빨래는 마을 주민들과 친밀해지기에 아주 좋은 소재였다. 이불을 맡기면 “언제 산거냐” 묻고 “첫째 아들 결혼할 때 혼수로 받았다”고 하면 “아들은 지금 뭐하냐”는 식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손쉽게 나눌 수 있었다. 빨래를 찾기 위해 이름을 적어야 하는 빨래방 특성상 마을 주민들의 이름도 자연스레 외웠다. 골목마다 마주치는 어머님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하루, 일주일 단위로 바쁘게 돌아가는 어머님들의 스케줄도 꿰게 됐다. 어느 순간부턴 이들도 자신의 소속을 부산일보로 말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땐 “빨래방, 김준용 기자입니다”, “어머님, 빨래방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렇게 주민들 사이에 녹아들며 이들은 지난 6개월간 빨래방 운영기와 주민들의 ‘진짜’ 이야기를 총 39편의 영상과 25편의 기사로 담아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 또 취재방식의 독특성 덕분인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생겨났다. 오직 산복빨래방을 보기 위해 강원도 양양군에서 부산여행을 온 독자도 있었다.


언론을 향한 마을 주민들의 인식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호천마을 ‘회장님’으로 통하는 조경자(78) 어머님은 “기자 분들이 맨날 서로 욕하고 정치인들 싸움만 하는 거 쓰는 줄 알았는데 좋은 글을 많이 올려주니 참 좋다”며 “덕분에 부산일보 이미지도 좋아졌다. (기자, PD들이) 회사에 돌아가서 귀여움 받고 승승장구해서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형들”과 매일같이 놀았던 김영훈(12) 군은 이번 경험을 계기로 장래희망을 기자로 바꿨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비록 부산일보 기자와 PD들은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산복빨래방을 떠났지만 빨래방은 잠시의 휴지기 뒤 운영을 재개할 예정이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부산일보가 마을에 시설을 기부해, 이달 중순부턴 호천마을주민협의회가 빨래방 운영을 도맡기로 했다. 김준용 기자는 “입사 이래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콘텐츠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원래 기성 미디어들이 하는 일인데, 조금 다른 플랫폼에서 해서 새롭게 봐주시는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진짜 일반인들의 위대한 삶을 들으며 초심을 찾았고, 원래 하려던 것을 했을 때 오히려 더 ‘뉴’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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