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8년, 그리고 이태원…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태원 현장 취재 기자들 "참사 대하는 조직 내부·현장 분위기 달라져"

  • 페이스북
  • 트위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한 기자는 진도 팽목항에서 자신을 향해 소리친 20대 여성을 똑똑히 기억한다. “말 같지 않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유가족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사연을 묻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취재 방식에 대한 원망이었다.


학생 전원 구조 오보, 속보 경쟁,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언론의 민낯을 바닥까지 드러낸 세월호 참사는 큰 숙제를 남겼다. 자성의 움직임이 일었고 언론단체들은 ‘속보 경쟁에 치우쳐 정확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재난보도준칙을 내놨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6명이 숨졌다. 방송사들은 특보 체제를 이어가고 신문사들도 지면을 대거 배정해 참사를 전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대형 오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비판받은 언론사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에선 사고 현장 영상 사용을 자제하고, 취재 방식 등에 대한 세부 지침을 공지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의 모습. /뉴시스


2022년 10월 한 신문의 사설처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사가 다시 일어났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최악의 압사 사고로 156명이 숨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달라지겠다고 약속했던 언론은 이태원 참사에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감정 치우치는 보도 경계 분위기... 방송사 “참사 현장영상 사용 자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지상파 3사와 YTN 등은 연이어 메인뉴스를 통해 “이태원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고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것보다 뉴스를 접하는 생존자와 유가족, 다수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심적 고통,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주목한 행보다. 조정 SBS 보도국장은 “가장 신경 썼던 건 영상 사용 문제”라며 “‘피해자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자극적인 영상 사용은 하지 않도록 한다’는 SBS 자체 보도준칙과 대한신경정신건강의학회 성명, 언론단체의 조언을 참고해 별도 기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 취재·영상 제작 과정에 대한 세부 지침을 마련해 과도한 취재와 자극적인 보도를 방지하려는 노력도 나왔다. 지난달 30일 MBC는 내부시스템을 통해 △미확인 정보의 언급을 삼가 △유가족은 최대한 위로와 애도의 마음가짐으로 조심스러운 취재 등의 내용을 공지했다. SBS도 이날 △구조 상황 화면은 구조대원 중심으로 노출하고 구조자의 모습은 철저하게 모자이크 처리 △이송 대기 중인 사망자 모습은 아예 쓰지 않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모자이크 처리 등 영상 사용 세부 기준을 공지했다.


KBS 보도국은 31일 ‘유족 취재의 원칙’을 취재진에게 공유했다. △빈소에서 유족을 취재해야 할 경우 유족에게 먼저 ‘취재해도 되는지’를 정중히 묻고, 허락을 받으면 취재에 임한다 △촬영기자는 유족 동의가 확보될 때까지 빈소 바깥에 있어 달라 △동의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라면 철수하면 된다. 무리해서 취재할 필요 없다 등의 내용이다.

뉴스 접하게 될 유족 등에 미칠 충격 최소화 주력

취재 기자들도 참사를 대하는 조직 내부의 변화와 무리한 취재는 자제하는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KBS 한 기자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학습한 내용이 많이 반영됐다는 걸 확실히 실감한다”며 “내부적으로 피해자나 목격자들의 감정에 치우치는 보도는 경계하자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취재 관련 세부 지침이 없을 때와 있을 때는 확실히 다르다”며 “빈소나 유가족 취재 관련 지시를 내릴 때도 세 번, 네 번 강조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당부가 나와 유념해 취재했다. 자연스럽게 기자들도 무리한 취재에 대한 심리적 어려움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사고 발생 직후 미흡한 보도도 적지 않았다. 사고 목격자 인터뷰 도중 희생자 지인으로 드러난 영상과 심폐소생술 등의 사건 현장을 반복적으로 내보내 논란이 됐고, 현장 시민 인터뷰 중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여과 없이 나오기도 했다. 또 온라인 속보 기사를 중심으로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채 희생자들의 사진을 싣거나, 흐림 처리를 했지만 도로에 시신이 놓여있는 장면을 내보내 비판이 나오자 기사를 삭제·수정한 사례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 혐오 표현을 그대로 실어 날라 소모적이고 갈등만 유발하는 등 참사를 ‘트래픽’을 위한 소재로 활용하는 기사들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현석 KBS 통합뉴스룸 국장은 희생자 지인 인터뷰 논란에 대해 “처음엔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초기 목격자 진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인터뷰를 썼는데 댓글과 국민 여론이 그분의 상처와 아픔을 상기시켜주셔서 바로 뺐다”며 “최대한 참사 피해 상황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이근 한겨레 편집국장은 “사건 당시는 뉴스룸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이미지가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 제공돼 (자극적인 사진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이 발생한 것 같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좀 더 침착하게 이미지를 선별해야 했는데 여전히 부족했다는 걸 느낀 계기”라며 “독자, 유가족이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원칙은 구성원 간 오랫동안 공유해왔고, 계속 노력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사고 초기 관성적인 특보 체제, 무리한 현장 인터뷰 등을 점검해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심석태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학습 효과이기도 한데 보도를 줄이거나 안 하면 비난받지 않을까 싶어 언론이 참사 관련 특보를 계속하며 관성적으로 보도 양을 늘리는 것도 분명히 있다”며 “어느 정도가 적정한 양인지 쉽지 않겠지만, 신중하게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라이브 인터뷰는 고도로 훈련되고 인터뷰를 정말 잘하는 소수의 기자도 큰 사고를 낼 수 있는 것”이라며 “사건 현장을 봤다는 사람에게 바로 마이크를 내미는 건 위험한 일이고 앞으로 방송이 자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은,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