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목숨값이 같지 않다는 걸 우리는 경험칙으로 안다. 이를테면 지난해 한강에서 실족사한 대학생과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대학생의 죽음이 적어도 언론에서만큼은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한강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던 의대생이 실족사할 확률이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사망할 확률보다 현저히 낮아서일까. 그도 그럴 것이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는 올 1~8월에만 하루 1.8명꼴일 정도로 ‘일상’이니까.
어떤 노동자의 죽음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 때가 있다. 지난 15일 SPC 계열사인 SPL 평택 공장에서 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노동자의 사건이 그렇다. 당일 경인일보의 첫 보도로 사고 소식이 전해진 뒤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사고 전후 SPL과 SPC의 부적절한 대처가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과 불매운동 움직임이 증폭되기도 했다. 대통령도 두 차례에 걸쳐 사건을 언급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런데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 온라인과 달리 일부 신문 지면에선 잠잠했다. 신문에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된 건 지난 17일. 마침 같은 주말 벌어진 카카오톡 먹통 사고가 모든 신문 1면과 주요 면을 장식한 가운데,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해당 사건을 사회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동아일보에서도 작게나마 사회면 한 부분을 차지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은 관련 기사 없이 경제면에 SPC그룹의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영국 런던에 첫 매장을 열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선과 중앙은 다음날에야 이번 사건을 신문에 보도했다. 조선은 그 뒤로 24일까지 단 두 건의 기사를 더 썼다. 사건 발생 이후 24일까지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는 3건. 전국 단위 조간신문 가운데 가장 적었다. 세계일보는 온라인에선 40여건의 기사를 보도했지만, 지면에 실린 기사는 5건뿐이었다. 같은 기간 경향과 국민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등은 각각 사설 포함 10건이 넘는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신문에 기사를 실을지 말지, 어떤 면에 어떤 크기로 넣을지를 결정하는 건 자율적인 편집의 영역이지만, 때론 경영상의 이유가 반영되기도 한다. 기업들 역시 광고나 협찬을 집행하는데 여전히 신문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SPC는 그 점을 이용해 언론 대응을 ‘잘’ 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9년 말, 경향신문이 SPC 관련 기사를 지면에서 빼는 조건으로 거액의 협찬금을 받기로 했다가 사장과 편집국장 등이 동반 사임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 뉴스타파에선 SPC의 홍보대행사 뉴스컴 대표였던 박수환이 조선일보 등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는데, SPC가 조선에 1단짜리 홍보성 기사를 실으려고 1억원을 썼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번에도 SPC는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애를 썼던 모양이다. 신정은 SBS 기자는 취재파일을 통해 “혹시 제목에서라도 ‘SPC’를 빼줄 수 있겠냐, 대신 ‘평택의 한 공장’으로 넣어줄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신지영 경인일보 기자는 사건 첫 보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부침이 있었”다며 “때론 회유를 외면했고, 때로 거친 항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SPC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언론사는 그 대가로 유무형의 이익이나 편의를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한 노동자의 죽음을 상세히 알리고, 미래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렇게 구할 수 있게 된 노동자들의 목숨값은 감히 산출할 수 없을 것이다. 자사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죽은 다음에도 버젓이 해외 매장 오픈 보도자료를 뿌리는 기업의 비뚤어진 윤리 앞에 언론윤리가 지지 않기를, 적어도 노동자(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기사만큼은 거래나 경영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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