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투자를" 세계일보 기자들 성명 반년째

[릴레이 성명에도 달라진 것 없어]
사측, '리틀엔젤스 60주년 공연'에
정·재계 인사 초청하려 기자 동원
기자들, 단체로 거부의사 밝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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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편집국이 위치한 용산 센트럴파크 타워 32층. 이곳 벽면에 기자들의 릴레이 성명서가 붙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지난 4월, “또 기자들이 떠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국기자협회 세계일보지회’ 명의의 성명이 붙은 뒤로는 반년 이상이 지났다. 세계일보에서 이처럼 기자들이 집단으로, 장기간에 걸쳐 목소리를 낸 건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그만큼 한계에 달했다는 게 기자들의 일관된 호소인데, 잇단 성명에도 사측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기자들은 대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8월, 2005년 입사한 17기 기자들로부터 시작한 릴레이 성명은 16기에서 최근 21기까지 여섯 기수에 걸쳐 이어졌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요지는 하나였다. “‘사람’에 투자하란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임금 정상화’와 ‘인력 확충’ 등에 대한 요구다.

세계일보 편집국 등이 위치한 용산 센트럴파크 타워 32층 벽면에 기자들의 성명이 붙기 시작한 지 반년째. 지난 4월 첫 성명이 붙은 이래 17일 현재까지 7개의 성명서가 게시돼 있다.


성명을 통해 기자들은 하나 같이 ‘허탈감’을 호소했다. ‘용산 시대’가 열리고도 달라진 게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세계일보는 용산 재개발을 이유로 2009년 서울 금천구 가산동으로 이전한 뒤 광화문을 거쳐 2020년 11월 지금의 용산 신사옥에 입주했다. 세계일보는 11년 만의 ‘귀향’을 맞아 “제2 창간”을 선언하며 재도약의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기자들 사이에선 사세(社勢)가 가장 기울었던 때로 기억되는 ‘가산동 시대’ 이후 지금의 회사 분위기가 최악이란 평이 나온다. 고질적인 인력난과 저임금이 가장 큰 이유다.


노동조합이 없는 세계일보에선 매년 임금 인상률을 사실상 회사가 정해왔다. 최근 5년간 평균 인상률은 2%대. 올해도 역시 지난해와 같은 2.5% 인상에 머물렀다. 수년째 흑자경영이 이어지고, 지난해는 10년 사이 최대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인상률은 그대로였던 셈이다. 거기에 올봄 이른바 ‘정윤회 문건’ 특종 보도의 주역과 “촉망받는 주니어 기자”가 동시에 퇴사하면서 기자들 사이의 위기감은 급속도로 커졌다. 이에 기자들이 기수별 성명을 내고, 회사도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대화’에 나서고는 있으나, 달라진 건 없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내년도 임금 인상률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기자들은 “처우 개선과 미래 인력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매출 등 경영 성적표만 의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회사가 연말에 열리는 ‘리틀엔젤스 예술단 창단 60주년 공연’에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기 위해 기자들을 동원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기자들이 단체로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평기자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보이콧’ 여부를 표결에 부친 결과 투표에 참여한 기자들 전원이 찬성했고, 세계일보지회는 지난 13일 회사에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리틀엔젤스 공연은 세계일보가 매년 주최하는 “창간이념에 입각한 봉사와 나눔”의 예술공연 행사로, 정희택 사장의 누나가 예술단장을 맡고 있다. 일각에선 연임을 노리는 정희택 사장이 60주년 공연을 맞아 세를 과시하기 위해 VIP들의 초청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일보 관계자는 “창단 60주년이라 공연 규모도 크고 모든 레벨이 올라갔기 때문에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분들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 한 것”이라며 “주요 VIP들과 기자들이 가까우니 섭외 도움을 요청한 거고, 할당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릴레이 성명과 행사 섭외 보이콧 등 전례 없는 기자들의 집단행동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21기 기자들은 최근 성명에서 “우리는 언론사 세계일보의 미래를 위해 사옥 전 층의 벽면을 하얗게 메우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떠들 준비가 돼 있다”며 “경영진은 하루빨리 우리의 요구에 구체적인 답변과 계획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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