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등장이 던진 숙제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상덕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이상덕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테슬라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처음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다. 가슴에 2.3kWh 배터리 팩을 달고 자율주행차용으로 개발된 시스템온 칩을 장착해 Wi-fi나 LTE로 통신하는 ‘옵티머스’다. 테슬라는 꽃에 물을 주고, 상자를 들어 올려 책상에 내려 놓고, 부품을 꺼내는 작업을 시연했다.


특히 ‘옵티머스’는 사람의 관절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 28개를 달고 있어 인간과 매우 흡사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특히 액추에이터 1개당 그랜드 피아노 1대를 들어 올리는 힘을 갖췄고 로봇 손으로 9kg 물건까지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렇지만 테슬라 로봇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넘어질 것에 대비해 밧줄을 묶어 천장에 있는 레일과 연결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로봇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대량 생산을 고려해 옵티머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목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의 목표는 유용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가능한 한 빨리 만드는 것”이라면서 “대량 생산이 될 경우 차보다 훨씬 저렴한 2만달러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 제작에는 수많은 기업들이 도전하고 있다. 현대차 보스톤다이나믹스, 쉐도우로봇 컴퍼니, 애질리티 로보틱스, 도요타, 샤오미, 소프트뱅크, 유비텍 등….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실리콘밸리 일부에서는 언젠가 인간의 육체노동이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기본소득제 논의들이 활발하다.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담론은 아니지만, 카운티 단위별로 올 들어 본격적인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줄잡아 미국 전체에 20개에 달하는 카운티가 프로젝트를 실시 중이다. 특히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더욱 그렇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손잡고 거주자 1000명을 상대로 3년간 월 1000달러를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평가하고 있다. 또 샌디에이고는 저소득 가구 150곳을 선정해 월 500달러를 제공하는 작은 규모의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실업률은 3.7%로 완전 고용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의 후폭풍에 실직한 이들이 상당수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일찍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은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많다.


이 같은 기본소득제 담론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의 개발과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테슬라 인공지능의 날에 “로봇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앞으로 육체노동은 선택이며,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틴 포드는 저서 ‘로봇의 부상’을 통해 휴머노이드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제 도입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본소득은 호숫가(소비시장)에 물고기(유동성)를 채워 넣는 행위라는 것이다. 로봇이 생산을 전담하기 시작하면 생산성은 늘어나지만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소비 여력을 없애 기업으로서는 재앙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이 다시 호숫가에 물고기를 채워넣을 수 있는 기본소득이라는 논리다. 자유주의의 아이콘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역시 ‘법, 입법, 그리고 자유’를 통해 “일정 수준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방지하려면 저소득층 보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여전히 방법을 둘러싼 논쟁은 치열하다. 전 계층에 급여를 주는 보편적 기본소득제부터 빈곤층을 상대로만 최소소득을 보장해 주는 마이너스 소득세, 국민 누구에게나 다양한 주식을 지급하는 자본 제공안까지 다양하다.


휴머노이드가 노동 시장까지 침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로봇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만 교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실직에 직면할 것이고 누군가는 더 큰 창조를 할지 모른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에게 던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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