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이 똑같이 보도한 내용을 두고 한 언론사만을 꼭 집어 고발한 것, 공영방송 보도책임자들과 사장을 무더기로 고발한 것 모두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지난달 29일 MBC는 국민의힘이 자사 사장과 보도국장, 디지털뉴스국장, 취재기자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이 같이 밝혔다. 단독 취재가 아닌데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MBC를 향해서만 비판의 화살을 꽂고, 보도에 관여했을 것이란 막연한 추정만으로 공영방송 사장의 검찰 수사를 의뢰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취지였다. JTBC·KBS·OBS·SBS·YTN 기자협회도 지난달 30일 낸 공동 성명에서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이 공개된 장소에서 한 발언을 취재 보도한 것이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식’을 모를 리 없는 여권에선 그럼에도 보름 가까이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과 관련한 파문을 이어가고 있다. 왜 이들은 무리수임을 알면서도 전 방위로 MBC를 압박하며 공세를 지속하는 것일까. 다수의 언론 관계자들은 비속어 발언과 외교 실책에 대한 비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부여당이 MBC라는 희생양을 만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달 27일 성명에서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외교무능’을 ‘비속어 논란’으로 덮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온다고 지적했고, 한국기자협회도 26일 성명에서 “정부와 여당은 스스로의 잘못을 덮기 위한 타개책으로 눈엣가시와도 같은 언론을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를 모면하려는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국민의힘이 MBC 보도책임자 등을 형사고발한 데 대해선 “해묵은” “구태의연한” “정치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3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우리 사법부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을 고발한 쪽의 손을 들어준 적이 거의 없다”며 “이 고발은 사법적 판단을 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 논란을 증폭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MBC 한 국장도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대상은 부패, 경제 등 6대 중대 범죄로 제한됐다”며 “대검에 고발하더라도 어차피 대검은 경찰로 사건을 넘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국민의힘이 굳이 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은 고발을 진지하게 검토한다기보다 일종의 정치 퍼포먼스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애초 진영 논리 뒤에 숨어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던 ‘꼼수’는 이참에 눈엣가시 같았던 MBC를 길들이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은 지난달 26일 성명에서 “국민의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자회견을 하고 MBC 항의방문을” 하며 “방송장악 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꼬집었고,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도 27일 성명에서 “안 그래도 탐탁지 않던 MBC에 책임을 돌리고 입맛대로 손보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도 28일 성명에서 “의원 수십 명이 버스까지 전세해 MBC를 항의 방문한다는 것은 항의를 가장한 협박이며 방송장악의 불쏘시개로 삼아보려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엔 심증이 있다. 이번 사태 이전 정부여당은 내년 7월 임기가 만료되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이미 여러 차례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 이를 두고 공영방송 사장 교체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우려가 컸는데,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해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방문진 이사는 3:6 구조로 야권 성향 이사가 더 많고 임기가 넉넉해 내년 초 MBC 사장 선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현 방통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이런 구도를 바꿔보려는 시도로 풀이됐다. 이 때문에 MBC에 대한 정부여당의 공세를 방송장악의 명분을 쌓아나가는 과정, 적어도 내년 사장 선임 절차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MBC 본사를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박성제 MBC 사장에 공식 해명이나 설명을 요구하고, 박 사장이 나오지 않자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심지어 권성동 의원은 “이제 MBC 민영화에 대한 논의를 우리 모두는 진지하게 시작해야 한다”며 “민영화를 통해 MBC를 우리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을 통해 정권에 맞지 않는 언론인을 좌편향으로 낙인찍고, 노조를 무력화한 뒤 마지막으로 소유구조를 개편해 민영화를 한다는 3단계 방송장악 공작을 떠올리게 하면서 큰 우려를 낳았다. 지난달 3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장경태 의원은 “이명박 정권 때에도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MBC 민영화 추진에 나섰던 전례가 있다”며 “국정원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하며 방송장악 시도를 이어갔다. 당시 국정원 MBC 장악 문건에는 ‘최종단계가 민영화’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 이제 정부여당이 이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는 “과거 PD수첩이 광우병 관련 보도를 했을 때 제작진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강제 구인, 그 이후의 언론 플레이들과 검찰 수사 등이 있었는데,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다”며 “MBC가 타깃이 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과거 보수 정권과 똑같은 수법으로 전 방위적인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단 경영진을 몰아세운 뒤 윤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한 MBC를 장악하겠다는 그런 수순으로 저희들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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