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후 행사장을 나오며 한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 언론은 대통령 발언에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붙여 보도했고, 대통령실은 오보라며 반발했다. 비속어를 사용한 비하성 발언에 언론과 야권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자, 윤 대통령은 출근길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직접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진상 규명까지 꺼내 들면서 사안은 대통령실과 언론의 정면 대결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대통령실 해명에는 ‘윤 대통령의 사적 발언을 언론과 야당이 무리하게 키운다’는 속내가 읽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논란이 불거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어차피 무대 위에서 공적으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라며 “사적 발언에 대해 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이 ‘공적’이 아닌 ‘사적’이라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발언했을 당시 행사장에는 국내 언론사는 물론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취재진으로 가득했다. 윤 대통령을 촬영하던 카메라는 윤 대통령을 몰래 찍고 비밀리에 녹음한 것이 아니라, 공적 행사를 하고 나오는 대통령의 모습을 허가받아 촬영하고 있었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하고 사적 발언이었다는 해명은 대통령의 무게에 걸맞지 않다.
대통령실은 문제의 발언을 ‘사적 발언’으로 규정하면서, 논란의 책임을 언론으로 돌리고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면서, “짜깁기와 왜곡으로 (외교 활동의) 발목을 꺾는다”고 말했다. 누가 짜깁기와 왜곡을 하는 것인지 주어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문제의 발언을 보도한 국내 언론을 지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해명에 나섰던 대통령실 관계자도 “(윤 대통령이) 지나가는 말씀으로 얘기한 것을 누가 어떻게 녹음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 진위 여부도 사실은 판명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언론을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화살은 MBC를 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날,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MBC의 행태를 도저히 두고 보기 어렵다”며 힘을 실었다. 야당과의 ‘정언유착’ 주장까지 나오면서 국민의힘 서울시의원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MBC 사장과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논란이 된 보도는 대통령실 풀 취재단이 촬영한 공동 취재물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발언 MBC 보도 전 이미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었다. 그 어느 출입처보다 정보가 빨리 퍼지는 국회에서 야당이 MBC와 짜고 오보를 무리하게 방송했다는 대통령실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속어를 발언한 사람은 윤 대통령인데 정작 논란의 책임은 MBC에 돌아가면서, 해당 보도를 한 기자 개인에 대한 신상털이와 협박 등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 길들이기에 나서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익을 강조하는 대통령실의 해명에는 국익을 앞세워 비판적 보도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이 깔려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보도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자 “국익 자해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국익이며, 어떤 행위가 국익과 반하는지는 대통령실이 아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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