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잔혹함

[이슈 인사이드 | 문화] 김재희 동아일보 기자

김재희 동아일보 기자

(이 기사에는 영화 ‘늑대사냥’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문제적 영화가 등장했다. 21일 개봉한 ‘늑대사냥’이다. 영화는 시사회 후 ‘역대 한국 영화 중 가장 잔인하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개봉 직후 ‘이 정도면 고어물(신체손괴, 살상 등을 소재로 한 영화 장르) 아니냐’는 비판의 한가운데 섰다. 사지가 절단되고 몸을 관통한 흉기가 장기를 끄집어내는 장면은 애교다. 아기를 칼로 찔러 죽이려는 장면이나, 시체에 소변을 보는 장면은 역겨움까지 불러일으킨다. 피칠갑의 생지옥을 구현하고자 영화에 쓰인 가짜피만 2.5톤에 달한단다. 영화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인터폴 적색수배자들을 태운 호송선 안에서 범죄자와 경찰, 그리고 의문의 괴생명체 ‘알파’가 죽고 죽이는 이야기다.


늑대사냥이 잔혹함으로 비판받고 있다지만 수위로 따지면 고어물 중에선 애교에 속하는 ‘쏘우’나 ‘킬빌’에도 신체를 아무렇지 않게 흉기로 훼손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로 매번 논란의 중심에 서는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살인마 잭의 집’은 아동 살해 장면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관객 100여 명이 상영 도중 퇴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인간지네’나 ‘카니발 홀로코스트’ 같은, 더 기괴하고 사실적인 고어물은 차고 넘쳤다. 늑대사냥이 고어물에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있다고 봤을 때, 장르의 특성상 지금처럼 비난받을 정도의 수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도리어 늑대사냥은 국민정서와 검열이라는 이름 하에 유독 잔혹함의 표현 수위에 빡빡했던 한국 영화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 이 정도 수위의 고어물이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은 ‘아니오’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늑대사냥이 프랑스에서는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고어물 강국인 일본이나, 표현의 자유를 훨씬 강하게 보장하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한국이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늑대사냥의 문제는 오히려 잔혹함 그 자체보다는 ‘재미없는 잔혹함’에 있다. 그나마 영화 중반까지는 강자와 약자가 계속 바뀌기에 누가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라도 있지 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잔인함을 위한 잔인함’만 무한 반복된다. 칼에 찔려도, 총에 맞아도 꿈쩍하지 않는 무적의 존재 ‘알파’의 등장에 호송선 안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그것도 아주 잔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반격도 도망도 무의미한 상황 아래 허무하고 지루한 사지절단과 총기난사만이 지속된다. ‘내가 이걸 지금 왜 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한줄평’들이 줄을 잇는 이유일 것이다.


잔인한 영화를 즐기지 않는 필자가 극장에서 두 번을 본 영화가 떠올랐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셔터’를 연출한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랑종’(2021년)이다. 개를 삶는 물에 담그거나, 악귀에 빙의된 여자 주인공이 책상 위에 올라가 소변을 보는 충격적인 장면들로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최단기간인 4일 만에 손익분기점(50만명)을 넘겼고, 총 83만 관객을 모았다. 논란 속에서도 랑송이 선전한 이유는 탄탄한 세계관과 스토리에 있다. 영화 커뮤니티에서는 랑종 속 장면에 대한 해석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N차 관람’을 한 이들도 많았다.


‘잔인해서 별로’라는 혹평을 가하는 관객은 없다. 그렇게 단순하게 영화를 판단할 정도로 한국 관객의 수준은 낮지 않다. 문제는 ‘이유 없는 잔혹함’에 있다. 잔혹함만을 위한 잔혹함을 전시하는 영화에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피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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