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으로서 나아가야 할 가치를 재정립하겠다.” 지난 2019년 3월 김명래<사진> 경인일보 기자가 노조위원장에 취임하면서 밝힌 포부다. 지역언론의 가치를 찾는 일, 그 첫걸음은 기사 읽기였다. 이때부터 김 기자는 경기·인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언론까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날그날 눈에 띄는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감상평도 덧붙였다. 큐레이션 형식의 기사 공유는 어느덧 3년 반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노조 사무실에 출근하면 항상 기사 스크랩 프로그램을 연다. 여기서 전국 곳곳의 지역언론이 선보이는 기사를 훑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취재부서에 있을 땐 우리 신문도 다 못 봤어요. 노조 일을 시작하고 나선 기사 읽기를 루틴으로 만들고자 했죠. 여러 지역 기사를 읽다 보면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도 하고 또 같기도 해서 흥미로워요. 전혀 몰랐던 걸 알게 되는 재미도 있고요.”
김 기자가 노조위원장을 처음 맡은 2019년엔 ‘포털 뉴스의 지역언론 차별 논란’이 한창이었다. 지역언론 몫으로 토론회 같은 공론장에 나섰던 그는 ‘지역언론이 외면받지 않으려면 콘텐츠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억울했다.
“전문가라고 해도 지역언론 기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니까, 비평이나 조언이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알리고 싶었어요.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뉴스가 여기 지역에 있다고요.”
최근 그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기사는 지난 6월 광주일보 보도다. 그간 신군부는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계염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를 두고 ‘시민군 위협에 따른 자위권 차원의 발포다. 그날 오전에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보다 2~3시간 앞서 실탄을 장착한 기관총 모습이 당시 광주일보사가 촬영해 보관해오던 사진에서 포착됐다. 김 기자는 “지역언론 기사가 곧 역사가 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여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물론 지역언론에 치켜세울만한 기사만 있는 건 아니다. 밖에서 비판받듯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쓰거나 낯간지러운 홍보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건 걸 보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부끄럽다”고 했다. 열악한 현실에 안타까울 때도 많다. “1면에 정말 재미있는 기획기사를 낸 기자가 있길래 이름을 검색해봤어요. 그날 하루에 기사를 7건이나 썼더라고요. 우리는 알잖아요. 인력이 부족하니까 일상 업무를 하면서 비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기획취재를 했겠구나. 마음이 쓰이죠.”
각 지역에서 분투하는 동료들을 기사로 만나면서 지역언론의 가치를 찾아가고 있다. 서울언론과 비교하면 지역언론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지금 어느 지역이나 인구소멸과 쌀값 폭락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서울언론에선 이와 관련해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고 김 기자는 평가했다.
“서울언론에선 우리 삶과 동떨어진 정치 드라마가 반복돼요. 인구감소, 쌀값은 당장 중요한 문제잖아요. 연구자나 정책 결정자들이 지역언론 기사를 보면 더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김 기자는 기사 공유를 ‘지역언론 노동 운동’의 하나로 여기며 지속할 생각이다. 그 여정에서 만난 기자들과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는 보람을 나누고 싶다. “지역기자 일은 상품이 되지 않는 노동인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기사여도 수용자에게 와닿지 않고 수익으로 이어지지도 않잖아요. 그런데도 직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에게 누군가는 기사를 읽고 있다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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