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머니’를 쓴 막심 고리끼는 구소련 사회과 교과서 서문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의 대표적 성과를 중앙아시아의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줄기를 돌려서 키질쿰 사막을 개간한 농업혁명으로 꼽았다. 소련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 흉년과 기근을 겪었고, 굶어 죽는 사람이 즐비했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비약적인 농업생산력이 굶주림과 추위를 극복해준 것은 맞다. 그러나 개간 후유증으로 아랄호가 사라져가고, 호수변 주민은 환경오염으로 새로운 풍토병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게 될 것을 고리끼는 몰랐을 것이다. 매번 자연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그 대가를 가져간다.
지난 8월 또다시 100년 만에 발생한다는 집중폭우로 서울 강남역 인근이 물바다가 되었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도 나왔다. 지난 9월에는 포항 용산천이 범람하여 이재민과 함께 희생자가 발생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보도와 달리 이번에는 기자들이 현장을 발로 뛰면서 실시간으로 재난을 중계했다. 부지런해졌다. 그런데 왠지 기사에서 고리끼의 느낌이 난다. 단순한 사실 반복과 행정당국의 초동대처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강남역 주변은 본래 농경지였다. 주변에 있는 야산에서 흐르던 마른 하천이 일부는 반포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일부는 양재천을 거쳐서 탄천으로 흘러간다. 그곳에 70년대부터 산을 깎아서 고급주택을 짓고,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지금의 서리풀공원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하여 서초역과 강남역 근처로 흘러들어오던 구불구불한 물줄기나 역삼동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모두 지하로 묻혔고, 우수관을 통해 양재천으로 흘려보낸다. 그 위로 수많은 고층 건물과 대형교회, 학교, 정부기관이 들어섰다. 고층 건물은 지하주차장과 상가를 만들기 위해서 터파기를 더 깊게 했고, 주변의 성가신 마른 물줄기는 일직선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마철에 넘쳐흐를 빗물의 속도와 수량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결국 고층 건물이 늘어날수록 물난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포항의 냉천 지류인 용산천도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면서 서울 강남처럼 마른 하천을 곧게 펴서 제방을 쌓았다. 그 위에 고급주택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수백 년간 큰 물난리 없이 지냈던 이곳이 태풍 힌남노로 하천이 범람하여 집을 잃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물줄기가 바뀌면서 냉천 하구에 있는 포항제철도 49년 만에 홍수피해로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재난보도를 찾아보아도 피해가 커진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안 모색을 위해 행정당국에 날카로운 대응을 주문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히 비가 내리고 사람들이 대피하기 위해 분주한 일상만 보인다.
자연재해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는 데는 원인이 있다. 대부분 인간의 탐욕이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서 처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난의 원인이 제대로 보도되어야 행정당국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할 것이고, 의회는 입법을 통해 피해 예방을 위한 조처를 할 것이다. 기후변화 자연재해가 늘어가는 시대에 재난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뛰더라도 재난의 원인을 찾고, 묻고, 의심하라. 그래야 고리끼가 되지 않는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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