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오늘 점심 얼마짜리 드셨습니까?” 인터뷰 도중 훅 질문이 들어왔다. 그날 나는 점심으로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1만2000원짜리 브런치를 먹었다. 식사와 커피를 한 번에 해결한 셈이니 비싼 광화문 물가치곤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1만2000원이요.” 그러자 그가 물었다. “혹시 생일이십니까? 아니면 신입사원이 온 날이라 기념으로 드신 건가요?” 농담 섞인 말이지만 뼈가 있었다. 자타 공인 ‘짠테크(짠돌이+재테크)’ 고수가 한 말이라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짠테크 고수, 홍승완 아주경제 기자는 지난 2019년부터 지금까지 3년 넘게 절약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아주경제 홈페이지에 ‘홍승완의 짠내일기’를 33회 연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최근엔 신간 <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를 펴냈다. 연재물 내용을 10%만 넣고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해 절약의 비법을 체계적으로 담은 이 책은 원래대로라면 지난 6월에 발간됐어야 했지만 우연찮게 짠테크 열풍이 몰아치는 최근, 시의적절하게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지금이야 ‘무지출 챌린지(하루에 한 푼도 안 쓰고 버티기)’ 같은 짠테크가 유행하고 있지만 그 이전 ‘보복소비’나 ‘욜로’가 있었듯 홍승완 기자도 예전엔 무계획적으로 돈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부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15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으면 다음번 월급을 받기 전 다 써버려 본가에 돈을 구걸하는 철없는 아들, 동생이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 푹 빠지면서 보여주는 삶에 심취해 20대 시절 돈을 한 푼도 모으지 못 했다.
극적인 변화는 2019년 그가 아주경제에 입사하면서 일어났다. “그 때가 29살 딱 중간이었는데 제가 스무 살 때 생각했던 서른의 이미지와 달랐습니다. 서른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아주 비싸진 않더라도 집이나 차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텅 비어 있는 통장을 보며 SNS도 끊고 돈을 좀 아껴 써보자, 결심했고 그렇게 절약의 길로 가게 됐습니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SNS를 끊었고 인내하고 절제했다. 양념치킨이 먹고 싶으면 양념치킨맛 삼각김밥으로 버텼고, 피자가 먹고 싶을 땐 피자빵 같은 가격이 저렴한 대체식품을 찾았다. 온라인 부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주로 회사로 출근했는데, 점심은 회사에서 계약한 식당에서 사비를 들이지 않고 먹고 커피도 탕비실 인스턴트 커피로 해결했다. 코로나19가 심했을 땐 회사에서 외부 식당 출입을 자제하라며 도시락을 시켜줬는데, 몇몇이 먹지 않아 남긴 도시락은 양해를 구한 뒤 집에 가져가 저녁식사로 대신하기도 했다.
절약의 삶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신용카드 없는 지갑에도 익숙해졌고, 집 근처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판매자가 있으면 직접 방문해 물건을 수령하며 배송비를 아끼는 소소한 삶에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 생활은 현재도 이어져 홍 기자는 최근엔 절약을 게임처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하루 1만원 이하로 소비하는 ‘만원의 행복’을 실천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절약의 강도는 다소 낮아졌는데, 지금은 치킨이 먹고 싶으면 대형 마트 치킨이라도 사먹는다. 물론 프랜차이즈 치킨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다.
절제의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3년 만에 그는 목표했던 5000만원을 모았다. 어떤 이에겐 적을지 몰라도 그에겐 아주 큰돈이다. “오늘 서점에 가니 누군 3년 만에 1억을 모았다고 해서 민망하긴 한데, 5000만원은 저에겐 정말 큰돈이거든요. 퇴근길마다 잔고를 확인하는데 이제 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만큼 절제하고 참았다는 걸 통장이 수치화해서 보여주니 스스로 대견스러운 마음이에요.”
그는 앞으로 3년 동안 또 5000만원을 모을 계획이다. 그동안 악착같이 돈만 모았다면 앞으론 부동산 등 재테크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홍 기자는 “과거엔 절약하는 사람들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는데 지금은 똑똑한 소비자, 절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는 것 같다”며 “제 책을 읽는 독자 분들도 자신감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제 팁에 자신만의 방법까지 더해 3년에 5000만원 이상 모은 분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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