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지난달 30일 세상을 등졌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펼치며 러시아뿐 아니라 전세계를 바꾸었다.
그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만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군대를 철수하는 등 군비 감축을 했다. 이어 1989년 12월 몰타에서는 조지 H.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역사적 담판을 거쳐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냉전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냉전 종식의 선언은 본격적인 세계화의 서막을 알렸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었던 세계는 이념을 떠나 하나가 됐고 경제적으로 국제분업이 본격화했다. 고르바초프 등장은 전세계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북한에게는 고립의 시작이었다. 냉전이 소멸하면서 한국은 1990년 9월 러시아와 수교를 했고 1992년엔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고르바초프는 민주화 시위가 동유럽 공산주의권 국가를 휩쓸 때 이들 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해 자유를 허용했고 이른바 ‘사회주의 블록’의 해체가 이뤄졌다.
세계화의 시작은 북한에게 고립의 본격화였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후원국가가 사라졌고 구상무역을 하며 경제적으로 근근이 버틸 수 있는 근거였던 동유럽 동지국가의 상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고르바초프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 차원의 냉전질서가 부활 조짐을 보이는 시기에 전해졌다. 미국은 중국과 갈등·경쟁을 이어가며 대립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국가들과 갈등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와중에 미국이 택한 공급망 전략은 국제분업질서를 붕괴시키는 모양새다. 대러제재는 러시아의 반발로 이어지면서 유럽경제는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화가 주던 이익과 혜택이 사라지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상황은 냉전의 붕괴로 어려움을 겪던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되고 있다. 북한은 대만, 남중국해 등 미·중 갈등의 이슈가 생길 때마다 노골적으로 중국 편을 들고 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며 확실하게 푸틴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등 잘못된 행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때문에…”라는 논리로 북한 편을 들고 있다.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올해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 결의안이 141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을 때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우크라이나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지역 재건 사업에 북한 노동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에게 숨통을 틔울 계기가 냉전의 부활을 통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한반도 상황은 더욱 풀기 어려워질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담대한 구상’을 내놓았지만 북한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정부는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 문제를 풀어보려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비빌 언덕을 마련한 만큼 현상의 강화와 상황의 악화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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