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대선, 화해의 월드컵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코리아 브라질 포커스 대표

김재순 코리아 브라질 포커스 대표

브라질의 2022년은 대통령 선거와 월드컵 축구대회라는 2개의 빅이벤트로 마무리된다. 10월 중 대선 일정이 끝나고 나면 2억2000만 브라질 국민의 시선은 곧바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는 카타르로 쏠리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줄줄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브라질 사회에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을 보여준다. 20여년간의 군사독재정권을 끝내고 이룬 1980년대 중반의 민주화 이후 가장 극심한 사회적 분열상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좌파 전직 대통령과 극우 현직 대통령의 맞대결 양상은 대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에 충분한 흥행 요소지만, 양극화한 세 대결은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는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줄곧 앞서고 있다. 브라질 최대 방송사인 글로부 TV와 유력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의 의뢰로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Datafolha)가 8월 중순에 벌인 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1차 투표(10월2일) 예상 득표율은 룰라 전 대통령 47%, 보우소나루 대통령 32%로 나왔다. 무효표와 기권표를 제외한 유효 득표율을 계산하면 51% 대 35%였다. 룰라 전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해 당선을 확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직의 이점을 안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막판 추격세를 고려하면 결선투표(10월30일)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결선투표 예상 득표율은 룰라 54%, 보우소나루 37%로 역시 룰라 전 대통령의 승리가 예상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대선 결과 왜곡 가능성을 들어 전자투표 폐지를 주장하며 대선 불복을 시사하자 사회단체와 재계,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수호’ 선언을 발표하며 그의 도발을 막고 나섰다. 대선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연방선거법원과 연방대법원도 전자투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했다.


여론에서 밀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1개월여 앞두고 이뤄진 TV 토론에서 그는 좌파에 대해서는 증오를, 언론에 대해선 공격 본능을 드러냈다. 코로나19로 수십만명이 사망한데 대한 사과를 거부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는 냉정했다. 자신의 정부에서는 부패가 없다는 공허한 발언을 반복하며 과거 좌파 정권의 부패 스캔들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룰라 전 대통령이 좌파 정권의 실패와 실수를 어느 정도 인정하며 국민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인 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선동으로 일관했다는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가 잇따랐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판정패라는 분위기다.


대선을 앞두고 나타나는 정치적 갈등과는 달리 월드컵 축구대회를 바라보는 브라질 국민의 시선은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다타폴랴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브라질의 여섯 번째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표팀에 대한 신뢰도 역시 54%로 2018년 월드컵보다 6%포인트 높아졌다. 축구에서만큼은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잉글랜드 등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월드컵 애국심’이 또다시 확인됐다.


브라질은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에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국이 ‘4강의 기적’을 낳은 그 대회에서 브라질은 ‘통산 5회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대회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자국에서 열린 2014년 대회에서는 독일에 1-7, 네덜란드에 0-3으로 대패하며 4위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다. 삼바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때 10위까지 추락하며 깊은 수렁에 빠졌으나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과 탄탄한 조직력이 뒷받침되며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현 대표팀 전력이 2002년 대회 못지 않은 수준으로 평가되면서 우승의 꿈을 부풀리고 있다.


브라질 사회가 대선을 거치면서 갈라진 민심을 월드컵을 통해 원만하게 봉합할지 주목된다. 브라질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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