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7년 여름, 은퇴를 앞둔 한 일간 신문사의 ㄱ기자는 마지막 칼럼을 쓰기 위해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2010년대 초반부터 기사와 칼럼을 통해 반복해서 경고한 내용이 있다. 이대로 낙동강을 포함한 4대강을 방치하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될 뿐 아니라 강을 생명줄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숱하게 경고해 왔던 내용들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낙동강 상수원에서 취수하는 물은 고도정화처리를 거쳐도 걸러지지 않는 오염물질과 중금속, 그리고 악취로 인해 더 이상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는 물이 되었다.
오랫동안 물을 가둬뒀던 4대강 보는 4계절 번무하는 녹조로 거대한 독성물질 탱크가 된 지 오래다. 이로 인해 강 주변 논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남조류가 생성하는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으로 오염돼 식품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렸고, 농민들은 생업을 잃어버리게 됐다. 1년 내내 사라지지 않는 악취로 천변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고, 강 주변의 레저, 숙박, 요식업 업체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강과 가까운 마을들 역시 주민들 대부분이 이사를 간 탓에 황폐화되었다.
극도로 부영양화된 강 속은 산소 부족으로 물고기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천연기념물 수달 역시 4대강에선 볼 수 없는 동물이 되었다. 일부 생태학자들은 4대강 유역 생태계에 ‘사망’ 판정을 내려버린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로 매년 반복되는 집중호우 피해를 막기 위해 보와 하굿둑 수문을 개방할 때마다 인근 해역 역시 녹조로 뒤덮이고, 해수욕장과 양식장 등에서 고농도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때문에 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선 보의 수문을 개방해야 하는데 마이크로시스틴 오염을 우려한 양식업 어민들 반발로 수문 개방도 여의치 못하게 되었다.
모두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자를 포함해 숱한 언론인, 과학자,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우려해 왔던 일들이다. 더 이상 하천 환경이 오염되기 전에 4대강 보를 해체해야 한다고, 해체 전까지 보의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년 전 4대강의 오염 실태는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정부 탓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농업용수나 식수원, 친수활동 공간 등 인간의 이용이 불가능해진 것은 물론 하천 생태계가 비가역적이라는 판단이 나올 정도로 파괴된 것은 한반도 남쪽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올여름 4대강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서는 위에 쓴 것처럼 SF영화 속 디스토피아를 떠오르게 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심한 녹조 창궐을 겪고도 정부는 4대강 보의 활용을 공언했다. 상수원과 수돗물, 농산물과 토양, 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남조류로 인한 오염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정수처리를 거치면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15년 뒤 여름 은퇴를 앞두고, 위와 같은 ‘4대강 디스토피아’를 다룬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품게 되었다. 그나마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것은 아직 4대강을 디스토피아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보를 없애고, 수문을 열고, 하굿둑을 열어젖힌다는 간단한 답이야말로 바로 언론이 한국 사회에 반복해서 제시해야 하는 내용임을 강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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