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거주하던 주거취약계층, 장애인, 빈곤층, 노동자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기후위기 재난으로 열악한 주거에 살던 사람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에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언론 등이 보다 다양한 대안과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시킬 때였다. 그러나 카메라의 초점은 또다시 주택 가격을 향하고, 부동산 시장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어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가 냉큼 쏟아진다. 그 많은 언론이 주목하는 집이란, 여전히 자산 증식 수단이다.
최근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 주택 재개발 2차 공모를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폭우 참사가 벌어졌던 역세권 등 상습 침수지역과 반지하주택 밀집지역에 가점을 부여한다. 정부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폭우 참사 이후 발표한 주거안정 대책 중 대표적인 정책은 ‘청년’을 위한 ‘역세권 첫 집’이었다. 주요 언론은 부동산 시장 침체를 우려하고, 이에 응답하듯 정부와 지자체는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으니 호흡이 척척 맞다.
정부와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을 들여다보면, 민간주도의 역세권 개발이라는 지향점이 동일하다. ‘역세권’은 교통, 일자리 등 인프라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허허벌판에 집을 짓던 공급자 중심의 주거 정책을 비판할 때 제시되는 키워드다. 주거취약계층의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것)을 보장하기 위해선 용산정비창과 같은 도심의 공공부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말고, 공공임대주택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민간주도’의 도시개발과 주택공급은 공공부지를 민간에 팔아넘기고, 주택과 토지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며, 향후 더 큰 주거불평등을 야기한다. 이미 한국은 수십 년간 민간주도의 개발을 일삼아왔고, 그 결과가 지금의 불평등이다.
개발 논리를 펼칠 때, 종종 ‘청년’이 쓰인다. 반지하 집이 물에 잠기고, 자립 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깡통주택이나 전세사기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떼이던 청년의 삶은 도시개발의 핑계가 된다. 이들은 아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청년, 대출을 받고 싶은 청년으로 납작하게 눌린 채 활자 위를 떠돈다.
폭우 참사 이후 ‘반지하’도 도시개발의 핑계로 잘 쓰인다. 그러나 ‘반지하’는 왜 사회문제로 여겨지는가? 누구에게나 폭우 때 물에 잠기지 않고, 폭염에 끓지 않고, 화재 시 탈출할 수 있는 집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거불평등에 놓인 취약계층의 삶 전반을 돌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민간주도의 도시개발만 속도를 낸다면 사회문제로서의 반지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도시개발은 저렴한 주거지를 없애 취약계층을 쫓아내고, 대출 확대는 종국에 집값 상승과 더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이어질 뿐이다.
보다 견고해질 청년세대 내 격차를 외면하는 정부와 용산정비창과 같은 도심 내 공공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기는커녕 민간에게 팔아넘길 궁리만 하는 서울시는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 다수 언론의 무관심에 힘입어 불평등의 굴레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며 불평등이라는 재난으로부터 서로를 구하기 위한 연대와 변화를 위한 움직임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약자’와의 동행은 활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모두의 주거권을 생존권으로 보장할 때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동행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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