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널리스트'를 경계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해 언론인 경력을 팔아넘기는 폴리널리스트가 예삿일이 된 지 오래다. 중견 언론인들의 인생 2모작이란 비판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언론인이 기업에 직행하는 ‘이코널리스트’가 증가하고 있는데, 기자 개인의 직업선택 자유로 인식하며 폴리널리스트에 비해 관대하게 대하는 편이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58주년을 맞아 실시한 기자 여론조사를 보면, 현직 기자의 기업체 직행에 대한 생각에 응답자 50.7%(매우 우려 13.8%, 대체로 우려 36.9%)가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기자의 정·관계 직행에 대해 67.2%(매우 우려 22.7%, 대체로 우려 44.5%)가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 데 비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용인하고 있다.


기자가 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을 가볍게 여겨도 될 일인가. 정치권력 못지않게 자본권력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언론 현실을 돌아보면 심각성에 비해 인식이 너무 안이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언론과 기업의 보이지 않는 유착이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시킬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 감시자에서 내부자로 자리바꿈하는 일은 언론보도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행위다. 최근 JTBC 보도담당 대표이사로 임명된 전진배씨를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JTBC 기자 출신으로 한화그룹 전무로 이직한 지 2년6개월 만에 화려하게 방송사 대표이사로 복귀한 걸 두고 비판이 적지 않은 건, 대기업에서 후계구도 수립과 커뮤니케이션 업무 등을 총괄하는 전략부문에서 일하다 언론사로 돌아오는 게 흔치 않은 일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져서다.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할 언론과 기업의 벽을 스스럼없이 넘나들며 언론인으로 3모작을 하는 모습에서 저널리스트로서 직업윤리를 팽개친 중견 언론인을 보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2년 전 뉴스타파는 ‘기업으로 간 언론인들’이란 보도를 통해 재벌의 손발 역할을 한 언론인 343명의 행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바 있다. 당시 보도를 보면, 보수·진보 매체를 가리지 않고 기업에 직행한 언론인들이 ‘오너리스크’를 관리하거나, 원활한 승계 작업에 동원된 것으로 나타난다. 언론인 경력을 십분 활용해 기업의 방패막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언론과 기업의 카르텔 실체를 엿보게 한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도 기억에 선명하다.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기사를 빼거나 줄이는 대신 광고를 거래하는 문자, 광고성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향응과 채용 청탁을 한 정황이 드러난 문자는 ‘경언유착’의 단면을 보여줬다. 기업 광고 의존도가 높아지는 흐름을 볼 때 광고성 기사가 관행이 된 현실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의문이다. 이런 행태들이 기자들이 출입처에 동화된 뒤 기업 이직의 발판을 삼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코널리스트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기업으로 이직하는 기자들의 연령대가 젊어지고 있는 상황은 착잡하다. 윤리적 잣대로 비판한다고 줄을 잇는 기업행렬을 막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아서다.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채 정체되고 미래가 불투명한데 마냥 언론인으로서 도덕적 의무감만을 지키라고 요구하기가 공허하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보람으로 돌아오지 않는 일, 외부의 따가운 시선은 ‘아큐정전’의 아큐처럼 ‘정신승리’로 버티기엔 임계점에 와있다. 기자들이 직업적 자부심을 갖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풍토를 만드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언론은 늘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 저력은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창립 58주년을 맞는 기자협회가 앞장서 이끌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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