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폐지·개선 요구 봇물… 전체 구성원 고민 필요

대법 "임피제 무효"… 언론계도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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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의 여파는 컸다. 지난 5월 말,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아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후 사회 곳곳에선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정부가 모든 임금피크제가 무효는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사측과 법적 공방을 예고하며 임금피크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언론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부 언론사에선 못 받은 임금을 돌려달라며 직원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임금피크제를 재협상하겠다는 노조도 생겨났다. 다만 언론사의 경우 대부분 정년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터라 노사 간 입장 차가 큰 상황이고, 임금피크제 완화 시 세대 간 갈등이 커질 수 있어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 5월 말 대법원 판결 이후 사회 곳곳에서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언론계 역시 예외는 아니라 일부 언론사에선 못 받은 임금을 돌려달라며 직원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임금피크제를 재협상하겠다는 노조도 생겨났다. 사진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 5월26일, 서울시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의 외벽 모니터에서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가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지속적으로 완화되다 새로운 국면 맞은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는 지난 2016년 언론계에 본격 도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년이 만 60세로 늘어나면서 언론사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자 비용을 절감하고, 이렇게 아낀 돈으로 신입사원을 뽑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언론사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지만 50대 중후반까지 근속년수에 비례해 임금이 상승하다 퇴직 2~5년 전부터 일정한 비율에 따라 감소하는 방식으로 시행돼왔다. 초기엔 임금이 턱없이 낮아진다는 시니어 기자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정부가 피크임금 대비 10% 이상 감액할 경우 개인에게 연간 최대 1080만원을 3년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많은 언론사들이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일부 언론사에선 세대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 CBS의 경우 시니어 기자 110여명이 노사 합의안에 강하게 반발하며 2노조를 결성했고, 국민일보도 고참 기자 11명이 임금피크제 재논의를 요구하며 2노조를 만들었다. 행동에 나서진 않았지만 상당수 시니어 기자들도 다른 업계에 비해 언론계 임금 수준이 낮다며 임금피크제가 퇴직 후 인생을 꾸리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우려했다.


내부 잡음이 끊이지 않는데다 2019년 정부보조금마저 중단되면서 임금피크제는 이후 노사 협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완화돼왔다. 본보가 15개 종합일간지, 경제지, 방송사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당수 언론사들이 삭감 폭을 조정했거나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의 경우 제도 초기 수령액은 만 56~58세 67%, 만 59세 70%였지만 정부지원금이 없어진 현재 만 56~57세는 90%, 만 58~59세는 86%의 임금을 수령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도 도입 초기 보직이 없는 직원들의 임금 수령액이 만 56세 70%에서 매년 5%씩 줄어드는 형태였지만 현재는 국장급과 부국장급, 그 이하로 직급을 세분화해 수령액을 늘린 상태다. 국장급의 경우 만 58세 때 90%, 만 59세 때는 80%를 수령한다.


시니어 기자들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마련한 곳들도 있다. 세계일보는 지난 3월 제도를 개선하며 임금피크제 적용이 제외되는 보직자 범위를 논설위원, 심의위원 등으로 확대했다. 또 보직이 없는 직원들도 업무능력에 따라 보상하겠다며, 인사고과 평가 결과 A등급 이상을 받을 시 다음 해 1년간 20%p, B+등급 이상을 받을 시 10%p 수령액을 상향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서울신문도 2019년 중단된 정부보조금 1080만원을 현재 회사가 대신 보전해주고 있는 상태다.


일부 언론사들은 안식년 제도를 마련해 임금 삭감의 불만을 잠재우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의 경우 만 57세부터 매년 50%, 70%, 80%가 깎이는 구조이지만 대신 이 기간 시니어 기자를 업무에서 완전 배제한다. KBS와 SBS도 만 59세 때 안식년을 주고 있고, YTN도 임금 총액의 40%를 수령하는 조건으로 만 58~59세 중 1년간 퇴직준비연수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만 59세 때 6개월간 안식년을 가질 경우 기존과 똑같은 60%의 임금을 수령하도록 하고, 1년간 안식년을 사용할 시 50% 수령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라 임금피크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건 무효라는 판결에 따라 아예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거나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언론사들은 이번 판결이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한 사례에 따른 것이라 정년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언론사에 그대로 적용하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도 임금을 과도하게 깎았다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도 있어 당분간 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MBC는 제3노조를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았던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노사 협의를 하려 했는데,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사측은 우선 큰 틀에서 논의를 해보자 말하고 있다”며 “일단 사측은 대법원 케이스와 MBC의 임금피크제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조합에선 그 사례에 비추어도 현재 MBC의 임금피크제가 무효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라 입장 차가 크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논의가 길어져 조합원들의 임금 채권이 소멸되지 않도록 일단 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최고행위를 해놓은 상태다. 국민일보와 중앙일보, YTN 등도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 요율 조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임금피크제 취지는 제대로 구현되었나
일각에선 이참에 임금피크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언론계에 본격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올해로 7년차를 맞았는데, 도입 초기 쟁점이 현재도 그대로 남아있어서다. 당시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은 임금이 줄어드는 만큼 기존과 다른 업무로 전환 배치되거나 근무시간 단축이 이뤄지길 희망했다. 기자직의 경우 다른 부서로의 전환 배치가 쉽지 않아 안식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또 타 업종에 비해 언론계 임금이 전반적으로 낮은 만큼 은퇴 이후 인생설계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문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다만 이러한 목소리가 현재 모든 언론사에 반영됐다고 보긴 힘들다. 안식년의 경우 일부 언론사에만 자리 잡은 상황이고, 재교육 프로그램 역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한국의 언론인’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 준비’는 여러 직업 환경 요인들 중에서 언론인들에게 가장 만족도가 떨어지는 항목이었다. ‘만족’한다는 응답이 9.2%에 그친 반면 ‘불만족’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3.0%에 달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 중 하나였던 젊은 세대의 일자리 창출도 실제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다. 언론재단의 ‘신문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기 직전 해인 2015년 일간신문의 기자직 종사자는 총 9496명이었지만 2020년엔 9575명으로 고작 79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현장에 있는 젊은 기자들 사이에선 인력 부족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뉴스룸 내 업무 배분에 대한 불만도 커지는 상황이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회사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고용 안정과 더불어 신규 채용을 내세웠는데 실제 그만큼 채용이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라며 “시니어 기자들은 임금이 줄었다며 업무 강도를 낮추는데, 그 업무를 채워줄 인력 채용이 부족하다 보니 오히려 일이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조에서도 임금피크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언론사가 인건비로 지출하는 돈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총액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시니어 기자들의 수령액을 올리면 그만큼 신규 채용이 어려워지거나 전체 기자들의 임금 인상 폭이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거나 수령액을 올리면 그에 맞게 시니어 기자들의 업무를 정상화하고 세대 간 근로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요구도 그래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대입하면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차별을 당하는 것도 위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금피크제를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으로 봐야지, 노노 갈등의 관점에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임금피크제가 연차를 뛰어넘는 모두의 담론이 되도록 환경이 조성돼야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고참 기자와 막내 기자가 조화롭게 일할 수 있게 뉴스룸 전반의 업무 조정과 개편이 논의돼야 하고, 언론사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방침도 수반돼야 한다. 관계자들은 “임금피크제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문제”라며 세대 간 배려를 통한 전체 구성원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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