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제한에 전쟁 보도 뒤처져… 국가 위상 떨어뜨리는 일"

우크라이나 특파 기자들이 전하는 '전쟁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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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5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국내 취재진이 우크라이나 현지에 특파돼 전쟁의 실상을 전했다. 기자협회보는 우크라이나에서 취재하고 돌아온 기자들에게 현지에서 느낀 경험과 고민을 들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달 22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엔 노지원 한겨레 기자, 신준명 YTN 기자, 홍지용 JTBC 기자가 참석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우크라이나 특파 기자들 말하는 전쟁 취재’를 주제로 좌담회가 열렸다. 우크라이나에서 취재하고 돌아온 기자들에게 현지에서 느낀 경험과 고민을 들어봤다. 사진은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지원 한겨레 기자, 신준명 YTN 기자, 홍지용 JTBC 기자.


-우크라이나에 특파된 기간과 취재한 지역을 소개해 달라.
노지원 한겨레 기자= 6월13일부터 2주 동안 키이우와 부차, 이르핀, 보르단카, 드미트리우카 등 외곽 도시를 갔다 왔다. (노 기자는 지난 3월5일~18일까지 폴란드 프셰미실 등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를 취재하기도 했다.)

홍지용 JTBC 기자= 5월10일부터 5일간 르비우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의 주요 외곽 도시들을 다녀왔다. 르비우는 서부 최대 도시다. 이곳에서 전쟁 후방 지역의 대비 태세나 공습 피해 실태를 살폈고, 피란민들이 가장 많이 거친 곳이기 때문에 이들을 주로 취재했다.

신준명 YTN 기자= 6월 초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대기하다 외교부 취재 허가가 나면서 들어가게 됐다. (우크라이나 현지엔) 일주일 동안 있었다. 키이우를 중심으로 전쟁으로 붕괴된 외곽 지역부터 도심까지 있었다.

-우크라이나 현장 취재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목격했고, 주목했나.
신준명=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하고 들어가려는데 키이우에 미사일이 다시 떨어졌다는 속보가 떴다. 몇 개월 만에 재공습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하고 들어갔다. 막상 가보니 위험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전쟁 중이라는 인식은 하고 있으나 러시아를 수도에서 몰아냈다는 자부심도 있는 것 같았고, 키이우는 점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르단카 등 공습으로 무너진 외곽도시를 다니면서 열심히 중계와 리포트를 했지만, 한쪽으론 이건 좀 과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인식하는 키이우는 포탄이 떨어지는 곳인 줄 아는데 실제로 가보면 일상이 굉장히 잘 지켜지고 있는 곳이었다. 회사에서 수십 킬로그램의 방탄조끼, 헬멧을 사줬다. 비싼 수화물 비용을 들여서 가져갔지만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대민 피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든 잊으려고 하고 있는데 철모 쓰고 ‘지금 여기선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중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늦게 간 탓에 전쟁의 분위기가 지나갔다는 걸 겪고 왔다.

홍지용= 2~3월엔 키이우도 공습을 받고 우크라이나 전역이 전쟁 상황이라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나왔는데 4월 말, 5월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러시아가 동부 지역을 장악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면서 서부나 중부 내륙 쪽에는 공습을 자주 하지 않았다. 이때도 일상화된 위험이 있다고 느꼈다. 공습경보가 여러 번 울리고 사람들은 미사일이 오는 정보를 문자나 애플리케이션으로 다 보고 있었다. 피할 사람은 피하는 건데 의외로 피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미사일에 맞아 죽는 거나 내가 지금 암에 걸리는 거나 비슷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떡하겠느냐 나라를 떠나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반은 자포자기, 반은 전쟁을 잊고 싶어서 그냥 다니는 거다. 피난을 갔다가 계속 해외에 있을 수 없으니 돌아온 분들도 많았다. 루마니아 접경지대에 만난 피란민들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 노인들이었다. 전쟁이 길어지고, 동부 지역에 전쟁이 한창이라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한 가지 덧붙이면 한국 언론사는 현지 취재에 제한이 있지 않나. 취재하려면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취재 기간도 5일이나 일주일, 한 달 이내로 좁혀져 있다. 접경국가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은 전쟁 초반부에 키이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부, 전쟁 중인 마리우폴 등을 한 달 이상 갔다 온 상태였다. 현장에서 느낀 언론사 간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노지원= 키이우를 되찾은 지 100여일 만에 다시 러시아의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겁을 먹기도 했고, 가기로 했던 국내 언론사들도 계획을 접고 안 간 곳도 있었다. 저희가 돌아온 날인 6월26일엔 제가 머문 호텔에서 3~6km 정도 떨어져 있는 아파트와 유치원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폭격이 있었다. 현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평소엔 공습경보가 있어도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땐 정말 3월처럼 다시 사람들이 지하철로 대피했다고 하더라. 공원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핏 일상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공습경보가 울린다고 매일 지하로 대피하면서 살 수 없지 않나. 어쨌든 생활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가끔은 친구들이랑 웃으면서 이야기도 해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다. 여전히 내재된 불안이 있다는 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다. 수도가 수복되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한 달 정도 걸려 키이우의 전기, 수도, 통신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을 90% 이상 복구했다고 하더라. 6월에 저희 취재진이 갔을 땐 세 달 정도 접어든 상황인데도 일부 도시는 재건을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집이 파괴돼서 갈 곳이 없는 주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지가 마련돼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겨울에 매우 춥기 때문에 그 전에 집을 마련해야 하는 게 1순위다. 이미 일이 다 일어났던 지역을 방문하는 거라 늦었지만 뭔가 기록을 해보자는 취지로 접근했다. 증언을 기록하기 위해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00명을 만나면 100명 모두에게 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민간인 대학살이 있었던 부차에선 시민 3명과 신부님을 만났다. 그중에는 러시아군에 납치됐던 분, 총에 맞은 분, 구급차 구급 요원으로 일하면서 러시아군 공격에 피해를 본 사람들을 치료한 분도 있었다. 피난처이기도 하면서 지하 분만실이 마련돼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가 그때의 기억을 들어보기도 했다. 지금도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려 했다. 트라우마 센터를 갔는데 극심한 외상 후 증후군에 시달리며 살아가기 어려운 분들이 있었다. 전사자 장례식에 대한 알림 문자가 매일매일 온다는 것도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저희 취재진도 매일 그런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도시 재건 사업이 전 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었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외부에선 이제 얼마나 더 끌어야 하는가,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떼어주고 전쟁을 끝내야 하는 건 아닌지 이야기하는 분도 많이 있는데 키이우 시민들에게 전쟁의 끝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행금지 국가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취재제한이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현지에서 취재의 한계를 느낀 게 있다면.
홍지용= 외교부가 허가제로 취재를 제한하지 않더라도 이미 현장에 충분히 많은 제약이 있었다.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금이 걸려 있어 그 시간에 함부로 다니면 검문을 당할 수 있다. 국경에서 키이우까지 거의 900km이고 중간에 다른 도시를 거치려면 차로 2~3시간씩 가야 해서 많은 곳을 다 가볼 수가 없었다. 사실 한 달, 두 달 있어야지 특정 지역, 주 하나를 제대로 볼 수가 있다. 외교부에선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취재 계획서를 쓰라고 했다. 계획서 양식을 받아보면 답답하다. 숙소 정보와 1일 차, 2일 차 등 날짜마다 위치를 다 적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현장에 가면 사안이 벌어지는 것에 맞춰 취재해야 하니 계획한 것과 상관없게 될 수 있다. 정부의 방침이 ‘계획서를 제출했으니 그 외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너희들의 잘못이다’라고 보일 수 있는 거다. 외교부가 서류 검사는 하지만 이후 현장에서 공습 정보 등 외교부의 안내가 오는 건 전혀 없다. 현장에 가면 취재진 자율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건데 이렇게까지 제한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루마니아나 폴란드 언론사 취재진은 이걸 생소하게 받아들인다. 전혀 없는 제도니까. 촉박한 시간 안에 보도를 많이 내야 했다. 그러다 보면 매일 고정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기 위해 폭격 맞은 곳을 가고, 피란민 인터뷰하는 식의 보도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장기화된 전쟁 때문에 벌어진 사회 문제, 빈부 격차, 국제 관계 등은 자세히 다룰 수가 없었다. ‘전쟁은 이렇다’, ‘폭격 맞은 곳이 있다’ 밖에 보여주지 못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한 1~2주 하다 보면 시간이 다 돼 돌아와야 했다.

노지원= 정부의 취재 제한이 과도하다는 건 동의한다. 시민 보호는 국가의 의무인 거고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다른 나라들도 전쟁이 나는 곳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론인이 아닌 이상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공익 목적의 진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는 허용하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고지 하는 등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언론의 자유와 안전 보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굉장히 쉬운 방법으로 한다는 게 아쉽다. 방탄모, 방탄복 구비는 우크라이나 국방부 요구 사항이었지 사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저희한테 딱히 요구한 건 없었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안전을 보장할 건지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면 우리나라 언론들도 준비를 하며 경험이 쌓일 거다. 취재 제한으로 한국 언론이 전쟁 보도에 뒤처지는 건 한국의 위상도 떨어뜨리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한국 기자들이 보도를 많이 해야 반갑고 취재 지원이나 인터뷰도 수월하게 해주지 않겠나. 외교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언론의 역할을 인정해주는 게 도움이 될 거다.

신준명= 우리가 기자라는 이유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본인들이 기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유튜버들도 허용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아마 외교부가 막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과했다고 본다. 취재 자유를 아예 막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언론 환경 완전히 바뀌었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다 기자가 될 수 있으니 앞으로 외교부가 어떻게 제한을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전쟁 취재를 할 때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그럼에도 자기 안전을 지키면서 현장 소식을 전하는 건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애초에 취재가 막혀 있으면 외신 매체를 받아쓰게 되고 전쟁을 일면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우리도 가서 외신과 비교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취재 자체가 막힌 것과 그래도 열려 있어서 조율을 하는 것과는 문제가 다른 것 같다.

-제한적인 취재 환경에도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나.
노지원=
지면엔 우선순위 기사들이 있으니 다 담을 수 없어서 디지털 기사로 양의 제한을 받지 않고 충분히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또 영상으로 취재해 유튜브 채널에 올리기도 했다. 한겨레는 후원제를 하고 있는데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100페이지 정도의 책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취재) 사진과 기사, 국제 정치 분석 기사까지, 한겨레의 콘텐츠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독자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굿즈’ 형태로 전했다.

신준명= 전쟁 현장을 보여줘야 하는데 키이우는 이미 끝난 곳이니까 할 수 있는 게 제한이 있었다. 내가 가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미콜라이브 사람들은 어떻게 취재할 수 있을까 해서 연락처를 수소문해 비탈리 킴 미콜라이브 주지사와 인터뷰를 했다.

홍지용= 어디가 폭격을 당했다고 보여주는 건 이미 너무 많이 해 피로도가 있고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5월엔 해외로 피난 가는 사람들은 줄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왜 돌아가는 사람이 많은지 알아보니 빈부 격차 때문이었다. 내가 살 만한 여유가 되면 해외에서 일자리도 구하고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텐 데 그러지 못했다. 장기간 전쟁을 견딜 수가 없으니 돌아온 거다. 완전히 함락된 동부 도시의 주민들은 아예 돌아가지 못하는 것 또한 주목했다. 임시 거주 시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 살게 해 줘서 감사한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질문이 있어서 그 답을 구하려고 르비우 시장 등 정부 당직자들을 만났다.

-국내 언론의 전쟁 보도 취재 환경은 관련 교육과 현장 매뉴얼이 있는 외신과 달리 취재진 개인기에 전적으로 맡기는 실정이다. 국내 뉴스룸이 전쟁 보도에 대한 취재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떤 걸 개선해야 할까.
신준명=
현지 코디네이터 역량에 따라 그날 리포트의 질이 바뀐다. 부차에서 ‘여기에 난민 거주지가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코디는 없다고 했는데 다음날 타사에서 보도가 나왔다. 그 코디는 난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 사람 마음도 이해는 되는데 그날 운과 코디의 역량에 따라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걸 경험하면서 일주일짜리 단파 특파원은 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간은 취재하러 가는 게 아니고 그냥 경험하러 가는 것밖에 안 된다. 우리 언론이 전쟁 취재에 관심이 있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누구 한 명이라도 보내야 되는 것 같다. 많은 걸 포기해야겠지만 거기서 계속 있다 보면 쌓이는 휴민트(인적 정보)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 취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다. 사실 기자들에게 제일 어렵고 힘든 게 현장에 떨어졌을 때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다.

홍지용= 비슷한 생각이다. CNN 같은 외신과의 차이는 많이 가봤냐 안 가봤냐 경험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코디네이터 문제도 여러 번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좌담회나 관련 기고들도 많이 생기면 경험이 누적이 될 텐데 10년 이상 끊어져 있던 거다. 갈 때마다 건건이 일주일에 특파원 몇 명 갔다 오고, 그다음엔 안 가고, 그렇게 한 2~3년 있으면 다시 단절된다. 지금부터 많이 계속 가고, 같은 언론사 아니어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면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노지원= 폴란드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며 터득한 요령이라고 하면 외신 기사를 참고하는 거다. 출발 전에 부차에서 일어난 민간인 대학살에 대한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 증거를 찾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봤다. 우크라이나 경찰이나 검찰 당국에 받아서 쓴 자료였고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 다 링크로 나와 있기 때문에 한국 언론들도 기사를 참고하면서 정보 공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취재 매뉴얼은 기자협회나 언론사들 차원에서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기자들이 그걸 기다릴 수만은 없어 말한 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가, 식량 문제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지에 있는 국내 취재진이 부족하다보니 관점까지 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만의 시각을 가진 보도를 위해 앞으로 어떤 보도를 해야 할까.
홍지용=
전쟁 참상을 전하는 건 1단계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전쟁이 왜 발생을 했고 누가 폭격했다는 걸 전하는 거다. 남아 있는 피란민이나 재건 문제 등을 다루는 것이 2단계인 것 같고,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정부는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이 유효한 것인지,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보여야 할지, 주변 국가의 역학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를 묶어야 하는 단계에 온 것 같다.

노지원= 안타까운 게 전 세계 언론 공통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비중이 크게 줄어든다는 거다. 결국 한국 독자·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 한국과의 연관성을 찾아 보도 가치를 높이는 게 가장 필요해 보인다. 지구 반대편 나라의 분쟁에 대해 보도하는 건 사실 편집국이나 보도국 차원의 결단과 투자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다들 공감하실 텐데 막상 보내놓고 첫날만 기사를 탑으로 하고, 그다음에는 뭔가 신경 안 쓰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타사에서 많이 하더라. 결국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신준명= 공감한다. 솔직히 말해 과감했으면 좋겠다. 경찰서 출입하는 기자들이 속보를 맨날 치다보면 경험이 쌓이듯 우리도 과감하게 돈바스도 가보고 마리우폴도 가서 해봐야 우리의 역량이 늘고 내 기사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 같다. 언론사들이 투자해서 당장 성과가 안 나와도 일단 이해해 줬으면 한다. 갔으니 하루에 기사 4개씩 쓰라고 하면 안 된다. 과감하게 투자도 하고 과감하게 취재도 허용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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