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취재가 없었다면, 제보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한국기자협회가 펴낸 기자들의 이야기 '2022 기자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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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어디든 기자들이 있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언론을 찾은 유가족에게 진실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하고, 국회의원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첩보를 실마리로 이중 삼중 확인 작업을 거쳐 밝혀내고, 망자의 이름과 발자취를 반년 넘게 쫓아 화장실로 변한 위안소의 처참한 풍경을 세상에 알렸다.

한국기자협회가 ‘2022 기자의 세상보기’를 펴냈다. 책의 기본적 얼개는 지난해 가장 뛰어난 기사에 선정된 제53회 한국기자상 수상작 취재기 7편과 기자협회가 지난 4월 기자 대상으로 공모한 취재 경험담 26편 등 모두 34편.

한 편마다 취재 단서를 끈질기게 쫓고, 핵심 취재원을 어렵게 설득하고, 부채의식으로 시작한 취재를 성사시킨 기자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지난한 취재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하는 직업적 애환과 함께 취재원에 대한 각별한 고마움, 기자의 책임감을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된 취재 뒷이야기도 풀어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발간사에서 “한두 편의 글로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들을 다 알기는 어렵겠지만 기자들의 열정과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판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기자협회가 펴낸 '2022 기자의 세상보기' 표지

한국기자상 수상작 7편에는 <공군 성폭력 사망 은폐 사건>, <곽상도 의원 아들에 50억 등 ‘화천대유 자금 추적기’>, <국세청 세정협의회 비리 추적기>, <탐사보고서 ‘기록’ 3D프린터와 암>, <5·18 북한특수군 김명국>,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등에 대한 취재 후기가 담겼다.

공군 성폭력 피해자인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공론화한 신재웅 MBC 기자는 이렇게 썼다. “제가 눈물이 많은 편도 아닌데 거의 울면서 취재를 했던 기억입니다. 통화를 하면서도, 밤늦게 인터뷰 녹취를 풀면서도 울었습니다. 기사를 쓰다가도, 그냥 집에 혼자 있다가도 울음이 나왔습니다. 그저 단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이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다. 고인의 삶과 죽음 이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밝히고 싶었습니다.”

취재 경험담 공모작 26편은 취재 뒷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취재원과의 여러 에피소드, 기사 때문에 울고 웃었던 사연들, 보도 이후 무력감에 억눌렸던 시간을 곱씹으며 기자로서 사명감을 다진 이야기들이 각별하다.

송승환 중앙일보 기자의 <인터뷰 갔다가 영정사진 찍고 온 인연>은 취재 때 찍은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쓰인 사연을 담았다.

송 기자는 2017년 4월21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황필상 구원장학재단 이사장을 법원 경내 흡연구역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7년 4개월의 증여세 소송에서 이긴 황 이사장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뱉으며 활짝 웃었고 황 기자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이듬해 12월 말, 황 이사장 가족이 황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버지께서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영정 사진을 쓰고 싶습니다.”

송 기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걸려 있는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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