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인가 '뉴스거리'인가… 원칙 없이 정보 쏟아내는 실종 보도

실종사건 보도, 규율 기준 없어
추측성 내용·정보 무분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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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에서 실종된 일가족이 사망한 채 발견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한 명의 실종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 1일 인터넷 언론 등이 먼저 보도한 ‘가양역 20대 여성 실종 사건’은 며칠 뒤부터 주요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가양역’과 ‘실종’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국내 주요 일간지, 경제지, 방송사 등에서 보도한 기사는 117건. 하루 평균 17건꼴이었다.


두 사건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실종 신고로 사건이 알려졌으나, 극단적 선택의 정황이 강하게 의심된다는 점이다. 일가족 사망 사건은 ‘자녀 살해’라는 범죄 가능성도 있다. 실종 사건과 자살, 범죄는 그 자체로도 다르지만, 관련 보도 행위도 달라야 한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은 자살과 범죄 사건 보도에서 ‘최소한의 원칙’을 주문한다.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을 것을, 범죄 사건에선 피의자와 피해자 등의 신상 정보를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을 것을 강조하는 식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발생한 두 사건 보도는 경찰 조사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인권보도준칙과 어긋난 셈이 됐다. 두 사건 모두 실종 사건으로 출발했고, 실종 사건에 관한 언론 보도를 규율하는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온갖 추측성 내용과 정보가 무분별하게 보도됐기 때문이다.


실종 사건에 당면한 최우선의 목표는 ‘찾는 것’이다. 경찰이 지난달 24일 실종 아동 경보를 발령하며 이름과 신체적 특징, 사진 등을 공개한 것도 “조속한 발견과 복귀”를 위해서였다. 실종아동법에 따라 경찰청장의 공개 수색·수사 요청에 응할 의무를 지는 방송사·통신사업자와 여기 해당하지 않는 다른 언론사들까지 실종 아동의 사진 등을 공개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도 같은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생사가 확인된 뒤에도 줄줄이 이어진 추측성 보도와 가족의 신변 관련 보도도 이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지난 1일 성명서를 내 “실종 사건으로 시작하여 추적과정이 상세히 보도되면서, 도구, 경제적인 상태, 특정 자산 관련 문제 등 사고 당시 과정들이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미성년 고인의 사진이 여전히 무분별하게 언론 보도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 등, 호기심만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가양역 여성 실종 사건은 가족이 직접 신상을 공개한 경우다. 아동과 달리 실종된 성인에 대해선 경찰이 신상을 공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언니)이 실종자의 사진과 연락처 등이 담긴 전단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자 다수의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가족의 증언 등을 토대로 실종 이유 등을 추정하는 기사들도 이어졌다. 며칠 만에 해당 가족이 제보가 아닌 악성 메시지에 고통을 호소하며 연락처가 담긴 게시글 등의 삭제를 요청했으나, 상당수 언론은 이를 기사화하면서도 기존에 보도한 전단 이미지 등은 그대로 남겨뒀다.


경찰의 공개 결정이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사건 당사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건 범죄 사건에서도 일반적이다. 우리 언론은 범죄 사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때도 인권보도준칙이나 자체 규범보다 경찰의 공개 결정 혹은 다른 언론의 선행 보도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대세 추종’이다. 이런 보도는 여론의 영향을 받고, 다시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언론 보도에 따라 단순 사고사가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국민 알 권리라는 건 착각”이며 “뉴스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보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수색 과정을 미디어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본다고 해서 빨리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예방적 효과도 전혀 없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지켜줘야 할 인격이 있는 거고, 보는 사람들에겐 트라우마가 전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사건 보도에 관해 명확한 자체 기준을 두고 있거나 내면화한 언론사는 다르다. 지난 10일 기준,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중 가양역 실종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이었다. 취재 결과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있어 보도를 자제한 것이었다. 김남일 한겨레 사회부장은 “실종 사건에 관한 보도 기준은 따로 없지만, 기본적으로 사건·사고 보도에서 선정성을 최대한 지양하고, 다른 언론이 쓴다고 추종 보도하는 것도 가급적 지양하고 있어서 그런 취재보도준칙이 이번 실종 사건에서도 적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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