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인생에 문득 시련이 닥쳐올 때가 있다. 조혜원 TJB 기자에겐 지난 2018년이 그랬다. 그 해 8월 주말 저녁, 태교 여행으로 호캉스를 떠난다며 들떠있던 그의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분비물이 쏟아졌다. 며칠 전 정기검진에선 별 이상이 없었던지라 조 기자는 별 일 아니겠거니,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들렀다.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임신 25주 2일 차임에도 자궁이 2cm나 열려있었다. 그는 당장 출산을 할 수 있는 응급환자로 분류돼 그 길로 고위험 산모실에 입원했다. 병명은 자궁경부무력증이었다.
그땐 버티는 것만이 조 기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의사는 적어도 30주를 넘겨야 아기에게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며, 병원에서 견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침대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소변은 물론 세수, 양치 등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매일같이 현장을 누비던 그의 세상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90×200cm 크기의 작은 침대로 바뀌었다. 사건팀에서 일하며 종종 병원에 들러 환자들을 취재했는데, 그때서야 조 기자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첫째 딸 다현이는 다행히 30주 1일이 되던 날,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출산 후에도 한동안 이른둥이 엄마로 온갖 고생을 겪었지만 그 역시 육아휴직 1년 3개월을 꽉 채워 2019년 12월 직장으로 복귀했다. 그 와중에 조 기자는 병상에서 기록했던 글들을 모은 ‘이백일에 백일사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전혀 몰랐던 세계인데 아픔을 겪는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저는 첫 아이가 잘 커줘서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고 아이가 계속 재활 치료를 받거나 장애를 겪는 주변 분들도 많아요. 누군가한테 되게 위로를 받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데 책이 없거든요. 과정이 정말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다, 제가 위로를 받고 싶었던 만큼 위로를 나누고 싶다, 그 생각으로 책을 썼어요.”
회사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진심으로” 일했다.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들이 로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건을 취재할 땐 어른들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생각에 부모들에게 더욱 공감하며 기사를 썼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는 조 기자에 부모들도 많은 제보를 했다. 이른둥이나 아동학대 문제엔 더 많은 관심이 갔다. 조 기자는 “육아휴직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기자로서 공백도 걱정되고 다시 복귀해서 잘 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도 들었다. 다만 그 시간이 기자로서, 엄마로서, 개인으로서 성장의 시기였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성장하는 그 시간을 통해 기자로서 사회에, 회사에 더 기여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남아 있는 기자들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체 근무자를 채용해서라도 많은 기자들, 특히 남자 기자들도 육아휴직을 편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3월, 조 기자에겐 또 한 번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쌍둥이를 임신한 것이다. 조산의 경험이 있었던지라 두렵기도 했지만 쌍둥이는 첫 아이를 낳았던 30주 1일을 최근 무사히 넘어섰다. 이제 다음 달이면 출산이다. “많이 누워있긴 한데 사실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대학원 마지막 학기라 논문을 준비해야 되거든요. 틈틈이 태교다 생각하고 논문을 쓰고 있어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귀한 시간이에요. 일단 건강하게 출산하고 세 아이 잘 키워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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