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다 논란이 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주요 인권 주제로 선정하고, 개정안 내용을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권위는 지난 한 해 동안의 국내 인권 상황과 이에 대한 평가, 개선책을 제시한 <2021년 인권상황보고서>를 지난달 22일 발간했다. 인권위가 1년간의 인권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사회적 이슈였던 문제나 잘 알려진 사건 중 인권의 관점에서 영향력이 큰 사안 66개를 주요 인권 주제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가짜뉴스와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이 포함됐다.
인권위는 보고서에서 “허위‧조작 보도와 소위 가짜뉴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언론보도에 따른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며 “더불어민주당(지난해 당시 여당)은 가짜뉴스 근절 등을 목적으로 한 ‘언론개혁’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기존 16개의 언론 관련 입법안을 통합‧수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받았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9월 예정됐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인권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비판받는 지점을 5가지로 짚었다. 첫째는 개정안이 규정하는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의 모호성이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그 특성상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의혹을 제기하거나 사회문제로 쟁점화하는 경우가 많다. 개정안은 허위 보도의 개념과 고위‧중과실 요건을 모호하게 규정해 불리한 기사와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려는 전략적 소송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배상 책임 유무 역시 법관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둘째는 뉴스 포털 등의 과도한 책임 문제다. 개정안은 네이버와 다음 같은 뉴스 유통 플랫폼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경우 포털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뉴스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가능성이 크고, 필연적으로 언론보도의 위축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인권위는 전망했다.
셋째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따른 과잉 책임 문제다. 이미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불법 정보 등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제도가 있는데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가로 도입하는 것은 이중 처벌이라는 문제제기다.
넷째는 언론 행위에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은 언론의 고발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지적, 다섯째로 해당 법안의 국회 소위 처리 과정에서 여당(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강행에 대한 비판과 국제사회에서 신뢰 하락이 우려된다는 비판 등이 이 보고서에 언급됐다.
인권위는 5가지 비판 요지를 바탕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권력 비판과 관련 없이 가짜뉴스를 통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언론의 신뢰 하락은 언론의 자유가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적 의사 형성을 보장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면서도 “언론의 더 높은 책임성을 요구하는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 방법과 주체에 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와 유네스코(UNESCO) 등 국제기구가 단순한 거짓 정보와 구별되는 구체적인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이를 참고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개념을 심도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 등의 불명확성 △포털 등에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조항 삭제가 필요해 보인다면서 이를 신중하게 검토‧보완하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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